부자들 고액기부 막는 ‘세금폭탄’ 대기업 일가 변칙증여 막으려 총주식 5∼20% 넘으면 증여세 英-獨선 규제 상한선 아예 없어 “대기업 견제 장치 강화 감안… 경영권 무관할 땐 대폭완화를”
180억 원 상당의 주식을 기부했다가 약 140억 원의 증여세 폭탄을 맞은 고 황필상 이사장. 2015년 인터뷰에서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동아일보DB
하지만 교회는 아직까지 함 회장의 기부금을 한 푼도 집행하지 못하고 있다. 증여세 납부 소송을 진행하느라 해당 주식이 담보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공익법인이 기업의 일정 비율 이상의 주식을 기부받으면 증여세를 내야 한다. 증여세를 면제받으려면 일반 공익법인은 취득한 주식이 해당 기업 총 주식의 5%, 성실공익법인은 5∼20%를 넘어선 안 된다.
교회가 주식을 기부받을 당시 일반공익법인의 증여세 면제 한도는 5%. 문제는 이미 오뚜기재단이 10% 가까운 오뚜기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 교회에 기부한 주식은 비과세 한도를 넘는 것으로 세무 당국이 판단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기부 선진국에 비해 까다로운 주식 기부 규정이 공익 기부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한다.
공익법인이 기부받은 주식에 세금을 물리는 법은 1991년 처음 시행됐다. 일부 대기업 등이 변칙 증여나 오너 일가의 계열사 우회 지배를 위해 재단을 만들어 주식을 증여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처음에 20%였던 비과세 상한선은 1994년 5%, 2008년 성실공익법인에 한해 10%로 조정됐다.
그나마 성실공익법인의 최대 상한선이 20%까지 확대된 건 고 황필상 구원장학재단 이사장이 세금폭탄을 맞은 사건이 터진 뒤였다. 2002년 모교에 180억 원가량의 주식을 기부한 황 이사장에게 세무 당국은 6년 뒤 140억 원의 증여세를 부과했다. 9년여 소송 끝에 대법원은 2017년 황 이사장의 손을 들어줬다. 경제력 세습과 무관한, 기부를 목적으로 한 주식 증여에까지 거액의 증여세를 부과하는 일은 부당하다는 판단이었다.
올해 7월 5개 재단에 총 29억 달러(약 3조3680억 원) 상당의 주식을 기부한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왼쪽)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부부. 버핏 회장은 자신의 사망 후에도 보유 주식을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할 뜻을 밝혔다. 뉴욕=AP 뉴시스
전문가들은 30년 전과 달리 대기업에 대한 견제와 감시 장치가 강화됐기 때문에 기부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공익재단을 통한 대기업의 우회 지배를 막기 위해서라면 증여세 대신 공익법인 기부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