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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자료 안 내도 되는 출마자 재산신고… 허위-축소 논란 되풀이[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20-09-23 03:00:00

‘재산 축소 신고’ 선거때마다 몸살




강승현 사회부 기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14일 발표한 21대 국회 신규등록 의원 175명의 재산 내역은 최근 큰 반향을 일으켰다. 4·15총선 입후보 당시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 신고한 재산 내역과 당선 뒤 국회사무처에 신고한 내역을 비교한 결과 전체 재산이 3182억 원에서 4925억 원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선관위 신고는 지난해 12월 31일, 국회 신고는 올해 5월 30일이 기준임을 감안하면 5개월 만에 약 1743억 원이 늘어난 셈이다. 1인당으로 계산해도 평균 10억 원이 증가했다.

경실련은 후보자 시절 재산을 축소 신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의원 10여 명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공문을 22일 발송하기도 했다. 해명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이르면 다음 주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다.

공직자, 특히 국회의원의 재산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주제 가운데 하나다. 특히 선거 때마다 재산 축소 신고 논란은 단골 이슈처럼 거론된다. 그만큼 후보자로 선관위에 신고하는 재산과 당선자로 국회에 신고하는 재산이 차이가 난다는 얘기다. 공직선거법은 당선되거나 될 목적으로 신분이나 직업, 경력, 재산 등에 대해 허위사실을 공표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도 관련 논란은 도돌이표처럼 이어졌다.

○ 선거 후보자 재산은 선거 다음 날부터 비공개

국회의원의 재산 공개는 1993년 공직자윤리법이 개정되면서 처음 시작됐다. 그해 7월 14일이 국회의원 재산 등록 첫날이었다. 이날 접수 창구에는 의원 보좌관들의 질의 전화가 줄을 이었다고 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이만희 국회의장이 등록하지 않아도 되는 출가한 자녀 재산까지 신고해 많은 의원들이 직계 존·비속에 대한 재산 등록 거부 규정을 물어봤던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공직선거 후보자가 선관위에 재산신고서를 제출하고 선관위가 이를 공개하는 규정도 1993년 신설됐다. 재산신고 사항은 선관위 게시판에 공고하게 됐다. 9년 뒤인 2002년엔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의 재산이 선거구민에게 공개됐다. 당시 신설된 공직선거법 제49조 12항에 따르면 선관위는 공직선거 후보자의 재산과 병역, 벌금 100만 원 이상의 범죄 경력, 학력, 과거 후보 경력 등을 ‘선거구민이 알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한다. 공직선거관리규칙 20조는 “선관위의 인터넷 홈페이지 등 선거구민이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으로 공개하라고 돼 있다.

하지만 후보자의 재산 공개는 기한이 정해져 있다. 역시 제49조 12항에 ‘선거일 후에는 (선관위에 제출한 자료를) 공개해선 안 된다’고 명시했다. 올해 총선에 적용하면 16일부터 후보자의 재산 관련 정보 등을 확인할 수 없다. 이로 인해 선거 전 공개했던 내역이 제대로 맞는지 사후에 검증을 하기 쉽지 않은 구조다.

올해 경실련 발표 역시 자체적으로 선관위에 공개됐던 내역을 따로 보관했다가 비교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실련 관계자는 “최소한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선거일 이후에도 자료를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한 정치권 인사도 “낙선자의 정보는 비공개로 하더라도 당선된 현직 의원은 후보자 때 공개한 내역을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공개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 선거 후보자와 공직자의 신고 기준 통일해야

후보자 시절과 공직자가 된 후 재산 내역이 큰 차이를 보이는 건 서로 다른 신고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는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재산 내역을 선관위에 신고해야 한다. 본인, 배우자는 물론 직계 존·비속 가족의 재산에 대해서도 신고 의무를 가진다. 다만 피부양자가 아닐 경우에는 고지 거부를 할 수 있다. 신고한 내역에 대한 별도의 증빙자료도 요구하지 않는다.

다소 느슨한 후보자 때와 달리, 당선이 되면 피부양 여부와 관계없이 가족의 재산 내역을 신고해야 한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다만 독립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구성원의 경우 예외적으로 고지 거부를 할 수 있지만 이 역시 관할 공직자윤리위원회의 검증을 거쳐 허가가 날 때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신고 정보에 대한 검증 절차도 당선 전후가 확연히 다르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는 원칙적으로 재산, 납세 내역 등 선관위에서 요구하는 관련 정보를 모두 기록해야만 후보자 등록을 할 수 있다. 문제는 후보자들이 제출한 정보에 대한 별도의 검증 절차가 없다는 점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후보자들이 제출한 자료를 취합해 유권자들에게 공개하는 것은 선관위의 몫이지만, 검증 의무가 없기 때문에 설사 허위 정보가 있다고 하더라도 걸러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1차적으로는 후보자의 ‘양심’에 맡기는 셈이다. 단, 선거 기간 상대 후보자나 유권자가 선관위에 문제 제기를 하면 예외적으로 조사에 착수한다.

검증 절차가 거의 전무한 후보자 때와 달리 당선 후 공직자가 되면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철저한 검증을 받는다. 국회사무처에 제출된 재산 내역은 약 3개월간의 검증 절차를 거친다. 문제가 있을 경우 위원회가 진상조사를 벌인다. 국회의원 외에 다른 선출직 역시 관할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철저한 검증을 받게 된다. 경실련 관계자는 “법에 따라 여러 번의 검증을 받는 당선자와 달리 후보자는 선관위가 그런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에, 검증 절차가 전무한 상황”이라면서 “선거 때마다 후보자 재산 축소신고 의혹이 끊이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물론 선관위도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다. 국회의원 재산에 대해 3개월가량 검증 기간을 두는 국회나 지자체 공직자윤리위원회와 달리, 후보자는 등록한 지 불과 며칠 뒤 곧장 선거운동에 들어가기 때문에 선관위가 검증을 할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다. 선관위 관계자는 “선거가 시작되면 선관위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선거운동과 투·개표 관리”라며 “특히 지방선거의 경우엔 입후보자가 1만 명이 넘는데 선관위가 그 내용을 다 검증한다는 것은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 선거 후보자 검증 강화하고 공천 방식도 바꿔야

이 같은 축소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선 모든 후보자를 검증하는 것은 시간이나 비용적 측면에서 한계가 있는 만큼 사후 검증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수천 명이 되는 후보자를 모두 검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면서도 “일정 기간만 정보를 공개하지 말고 당선자에 한해 후보자 때 공개한 정보를 상시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투명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했다.

각 정당의 보완 노력도 중요하다. 비례대표의 경우 이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거 전 비례대표 후보자에 대한 검증을 강화하는 한편 문제가 되는 경우 강력하게 징계하는 등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선거일에 임박해 후보자를 공천하는 현행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 교수는 “선거 바로 직전 후보가 결정되는 등 검증할 시간 자체가 없는 것도 문제다. 공천 시스템의 근본을 손보지 않으면 후보자 검증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면서 “한시적으로라도 비례대표 공천 시한을 정하고 남은 기간은 후보자 검증을 해보는 실험을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후보자 시절 느슨한 검증 과정이 이 같은 사태를 불러온 만큼 선관위의 검증 기능을 강화해 바로잡자는 목소리도 있다. 경실련 관계자는 “후보자에 대한 검증을 강화하지 않는 이상 재산 내역 등 부실 제출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면서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지만, 인력을 확충해서라도 후보자 정보에 대한 투명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도 “선관위의 스크린 과정이 있다면 후보자들이 좀 더 신중하고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할 것”이라면서 “현재 관련 부작용들이 있는 만큼 기본권을 제한하지 않는 선에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치권에서도 개선 움직임이 조금씩 일고 있다. 국회에서는 16일 ‘선거일 이후 후보자 재산 등 내역에 대한 비공개 조항을 고치자’는 취지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 개정안은 부칙에서 21대 총선 당선인의 정보도 바로 공개하도록 돼 있다. 해당 법률 개정안에는 모두 19명의 의원이 발의자로 참여했다.

강승현 사회부 기자 byhu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