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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美 미지근한데… 文대통령 ‘비핵화 없어도 종전선언’ 러브콜

입력 | 2020-09-23 03:00:00

유엔 기조 연설서 ‘先종전선언’ 강조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녹화된 영상을 통해 제75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이제 한반도에서 전쟁은 완전히, 그리고 영구적으로 종식돼야 한다”며 한반도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2일(현지 시간) 유엔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에 대한 협력을 요청한 것은 11월 미국 대선 이후 남북, 북-미 대화 재개의 모멘텀을 마련하기 위한 카드로 풀이된다. 하지만 비핵화가 아직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먼저 종전선언을 제안한 것을 두고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종전선언의 조건으로 뒀던 그동안의 원칙을 바꾼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이 여전히 “남북협력은 비핵화와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비핵화 없는 종전선언’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 ‘방역 협력→대북제재 완화→북한 대화 참여’

문 대통령은 이날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보장하고 세계질서의 변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그 시작은 평화에 대한 서로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한반도 종전선언”이라고 했다. ‘평화의 시작’ ‘평화체제의 문’이라는 표현을 통해 사실상 종전선언을 통해 비핵화를 견인한다는 선(先)종전선언 구상을 내비친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8년 9월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문 대통령은 “앞으로 비핵화를 위한 과감한 조치들이 관련국 사이에서 실행되고 종전선언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한다”며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종전선언의 조건으로 제시한 바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이날 “방역과 보건협력은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과정에서도 대화와 협력의 단초가 될 것”이라며 “북한을 포함해 중국, 일본, 몽골, 한국이 함께 참여하는 ‘동북아시아 방역·보건 협력체’를 제안한다”고 했다. 지난해 유엔총회에서 제시한 미국 등이 참여한 동북아 철도공동체가 남북철도 연결을 위한 대북제재 완화가 막히며 지지부진한 가운데, 이번엔 미국이 빠진 다자간 방역협력체 구상을 제시한 것. 북한에 방역물자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대북제재 완화까지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여러 나라가 함께 생명을 지키고 안전을 보장하는 협력체는 북한이 국제사회와 다자적 협력으로 안보를 보장받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다자간 방역협력체가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체제안전 보장과도 맞닿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백신 개발을 위한 정보 교류는 모두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문제”라며 “중국과 일본이 적극적으로 나서 준다면 북한도 따라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 “종전선언으로 북한 변화 기대 어려워”

하지만 문 대통령이 비핵화를 전제로 하지 않은 종전선언을 제시한 것을 두고 안보 현실과 동떨어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의 비핵화 대화 제안을 잇달아 거부한 북한이 다음 달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앞두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새로운 전략무기를 공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 시간)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에서 “우리는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를 위해 계속 노력해가야 한다”고 밝히는 등 미국은 확고한 선비핵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청와대는 11월 미국 대선 이후 내년 1월 김 위원장의 신년사까지 약 두 달이 비핵화 대화 재개의 사실상 마지막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금도 한반도 평화는 아직 미완성 상태에 있고 희망 가득했던 변화도 중단돼 있다. 그러나 한국은 대화를 이어나갈 것”이라며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당장은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도 불투명하다는 것이 외교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북-미 간 상시적인 소통 경로인 ‘뉴욕채널’도 사실상 닫혀 있는 상태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북한에 메시지를 띄워도 북한이 제대로 된 답을 하지 않는 구도가 이어진 지 꽤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황형준 constant25@donga.com·한기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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