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기조 연설서 ‘先종전선언’ 강조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녹화된 영상을 통해 제75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이제 한반도에서 전쟁은 완전히, 그리고 영구적으로 종식돼야 한다”며 한반도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청와대 제공
○ ‘방역 협력→대북제재 완화→북한 대화 참여’
문 대통령은 이날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보장하고 세계질서의 변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그 시작은 평화에 대한 서로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한반도 종전선언”이라고 했다. ‘평화의 시작’ ‘평화체제의 문’이라는 표현을 통해 사실상 종전선언을 통해 비핵화를 견인한다는 선(先)종전선언 구상을 내비친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8년 9월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문 대통령은 “앞으로 비핵화를 위한 과감한 조치들이 관련국 사이에서 실행되고 종전선언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한다”며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종전선언의 조건으로 제시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여러 나라가 함께 생명을 지키고 안전을 보장하는 협력체는 북한이 국제사회와 다자적 협력으로 안보를 보장받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다자간 방역협력체가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체제안전 보장과도 맞닿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백신 개발을 위한 정보 교류는 모두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문제”라며 “중국과 일본이 적극적으로 나서 준다면 북한도 따라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 “종전선언으로 북한 변화 기대 어려워”
하지만 문 대통령이 비핵화를 전제로 하지 않은 종전선언을 제시한 것을 두고 안보 현실과 동떨어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의 비핵화 대화 제안을 잇달아 거부한 북한이 다음 달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앞두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새로운 전략무기를 공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 시간)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에서 “우리는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를 위해 계속 노력해가야 한다”고 밝히는 등 미국은 확고한 선비핵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청와대는 11월 미국 대선 이후 내년 1월 김 위원장의 신년사까지 약 두 달이 비핵화 대화 재개의 사실상 마지막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금도 한반도 평화는 아직 미완성 상태에 있고 희망 가득했던 변화도 중단돼 있다. 그러나 한국은 대화를 이어나갈 것”이라며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황형준 constant25@donga.com·한기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