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판결성향 분석]대법관 판결 성향 지수 보니
김명수 대법원의 판결 분석 결과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진보 성향인 ‘신(新)독수리 5형제’의 등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 2년 차인 2017∼2018년 임명한 5명의 대법관을 말한다. 이들은 전원합의체 판결 10건 중 7건에서 같은 의견을 내며 두터운 ‘진보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던 김명수 대법원장과 역시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이달 8일부터 임기를 시작한 이흥구 대법관을 더하면 전원합의체 과반(7명)이 확보된다.
○ 진보법관 5명, 전합 판결 71% 일치
김명수 대법원의 진보 성향이 커지고 있다는 인식은 동아일보가 서울대 한규섭 교수팀과 함께 최근 15년간 전원합의체 판결 274건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로 확인된다. 현직 대법관 14명 중 5명이 진보 성향으로 나타났으며 이들 중 김선수 대법관이 가장 진보적이었다. 김선수 대법관은 분석 대상이 된 전·현직 대법관 46명 중 진보 4위였다. 박정화, 김상환 대법관이 전체 진보 6, 7위로 뒤를 이었다. 민유숙, 노정희 대법관도 진보 9, 14위로 분류됐다.
5명의 대법관은 ‘여순 사건’ 당시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사형당한 민간인의 유족이 재심을 열어달라며 낸 소송에서 “재심을 열 수 있다”는 다수 의견을 냈다. 재심은 판결이 확정된 사건의 재판을 다시 연다는 뜻이지만, 이 사건은 확정 판결문이 남아있지 않아 재심 대상인지 불분명했다. 김선수 대법관은 “유족을 특별법으로 구제해야 한다는 이유로 재심 청구를 거절할 수 없다. 더 나은 입법을 기다린다며 사법의 역할을 포기해선 안 된다”며 보충 의견도 냈다.
김선수 대법관을 제외한 4명의 대법관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한 상고심에서 “질문에 답했을 뿐 적극적으로 허위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며 올 7월 함께 무죄 의견을 제시했다. 중도 성향인 권순일 전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이 같은 의견을 내면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이 파기 환송됐다. 4명의 진보 대법관은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부부가 정치 평론가 변희재 씨 등을 상대로 “종북, 주사파라고 비방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낸 소송에서도 “보수 정권기에 종북, 주사파로 낙인찍히는 건 상상 못할 공포”라며 이 전 대표 측 손을 들어주는 소수의견을 함께 냈다.
○ ‘보수 4형제’는 반대의견 결집
대법원 구성원 과반이 진보로 기울면서 ‘보수 4형제’가 반대의견에 결집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현직 대법관 중에선 노태악, 이기택, 안철상, 이동원 대법관이 보수 성향이었다. 46명의 전·현직 대법관 가운데 각각 6, 12, 15, 16번째로 보수적이다. 현직 보수 1위인 노태악 대법관이 올 3월 4일 임기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조희대 대법관과 이기택, 안철상, 이동원 대법관 순서로 대법원 안의 ‘보수 4형제’ 역할을 했다.
노태악, 이기택, 안철상, 이동원 대법관은 박상옥 대법관과 함께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한 상고심에서 이 지사의 혐의를 유죄로 봐야 한다면서 “TV토론회에서의 허위 발언을 처벌할 수 없다는 듯한 다수의견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대법원이 확립해온 태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해 화제가 됐다. 이기택, 이동원 대법관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를 무효로 본 다수의견을 비판하면서 “완벽한 법체계를 애써 무시하면서 입법과 사법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내년부터는 전체 대법관 14명 중 진보 성향 대법관이 10명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돼 각각 중도, 보수로 분류된 박상옥, 이기택 대법관은 내년 5월과 9월 퇴임한다. 박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이 2명의 공석을 포함해 대법관 총 13명을 임명할 수 있게 됐다.
고도예 yea@donga.com·유원모·박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