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갈등 일촉즉발 증오 양상 피해자 비난하고 희생양 만들 우려 갈등 덮기보다 효율적 조정이 중요 성숙한 사회 기본은 공정과 존중 ‘사회통합’은 이해조정 그 자체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다만 최근의 한국 사회 갈등 양상 속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축이 정규직 대 비정규직, 청년 대 중장년, 수도권대학 출신 대 지방대 출신, ‘친조국(親曺國)’ 대 ‘반조국(反曺國)’ 등 다양하게 분화하면서 갈등 상대가 손에 잡힐 듯 구체화되고 있다. 아울러 상대 집단을 향한 갈등이 분기탱천하는 분노 수준을 넘어 일촉즉발의 증오 수준으로 심화되고 있는 듯하다.
이토록 위태로운 사회갈등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 아래 양극단에 서 있는 이들의 ‘만남’을 시도해 본 동아일보의 기획 ‘극과 극이 만나다’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서구에서 대규모 이주가 이루어지던 때 이주민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부정적 고정관념 및 차별과 배제 등으로 높은 수준의 사회갈등이 촉발된 적이 있다. 당시 이주민들의 삶에 담긴 신산(辛酸)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의 입장을 들려주는 ‘경청’의 자리를 마련하면서 서로 간 갈등이 서서히 해소되고 때로는 이주민과 공고한 유대가 만들어지던 선례를 떠올리게 한다.
갈등이 양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정작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손잡고 협력해야 할 동료들끼리 편 가르며 적대감을 드러내거나, 엉뚱한 희생양을 만든 채 갈등을 덮어버리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극과 극이 만나다’ 기획 기사에는 갈등 촉발 요인으로 지방인재 등용 정책과 65세 이상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이 등장한다. 두 정책 모두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역차별 및 특혜로 인식되면서 예기치 않은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특정 사회집단을 대상으로 혜택이 부여됨은 그 이면에 그들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임을 숙지한다면 불필요한 갈등의 소지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철저한 노인복지 제도를 갖추고 있는 스위스에서는 노인을 위한 별도의 대중교통 혜택이 없다지 않는가.
나아가 공정한 시스템을 갖추는 일 못지않게 우리에게 필요한 과제는 극과 극에 서 있는 사람들끼리도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일일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능력은 성숙한 시민의 기본 자질이다. 요즘 회자되는 ‘내로남불’은 비합리적인 자기정당화와 다름없으며, 옳고 그름의 기준이 내 편이냐 네 편이냐에 머물러 있는 미성숙한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협상 및 조정의 가능성을 차단한 채 갈등을 위한 갈등 내지 갈등의 극단화 양상을 띠게 마련이다.
통합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integration’이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구성원의 이질성 및 다양성을 전제로 하고 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회통합이란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하나가 되자’는 의미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상충하는 집단 간 이해관계를 공정하게 조정함으로써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소해가는 과정에 더욱 가깝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네 편 내 편 가리지 않는 진정성을 갖춘 공정한 시스템과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기반으로, 인정과 존중의 문화를 실행해간다면 양극단으로 치닫는 갈등 또한 서서히 해소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