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1990년대 초 동갑내기(1973년생) 대학야구 투수 ‘빅3’는 화려한 야구 인생을 살았다. 조성민은 일본 최고 명문 요미우리의 선발 투수로 활약했다. 임선동은 2000년 18승을 거두며 KBO리그 최우수선수(MVP)로 우뚝 섰다. 박찬호는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뒤 아시아 투수 최다승 기록(124승)을 세웠다.
하지만 이는 모두 까마득한 옛날 얘기다. 요즘 한국 야구는 ‘고졸 세상’이다. 학벌 위주의 한국 사회에서 야구는 드물게 학벌이 거꾸로 돌아가는 세계다. 가장 우대받는 건 ‘고졸’이다. 그다음이 2년제 대학이고, 4년제 대학은 마지막이다. 이 같은 서열은 프로에 가까운 순서대로 정해진 것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고교 졸업반 선수들은 프로와 대학을 두고 고민했다. 그렇지만 요즘 유망주는 열이면 열 프로 직행을 택한다. ‘시간=돈’이기에 선수들은 하루라도 빨리 프로에 들어가길 원한다. 프로 입단이 가능했는데도 대학을 택한 것은 NC 나성범(연세대 졸) 정도다. 사정이 이러니 대학에 가는 선수들은 시작도 전에 ‘실패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이 때문에 최근 야구계에서는 ‘얼리 드래프트’ 제도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대학 2학년을 수료한 선수들을 드래프트 대상에 올리는 게 주 내용이다. 대학 감독들이 안건을 가결했고,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가 최근 관련 내용을 한국야구위원회(KBO)로 보냈다.
기대 효과는 여러 가지다. 무엇보다 선수들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줄 수 있다. 현재는 고졸 때 지명을 받지 못하면 대학 졸업까지 최소 4년을 기다려야 한다. 2년 후 다시 한 번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선수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된다. 대학 입학 후 뒤늦게 실력이 부쩍 는 선수도 있다.
대학 야구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다. 현재는 지명을 받지 못한 많은 선수가 프로팀 연습생으로 입단하거나 독립 리그 팀으로 간다. 대학으로 오는 선수가 모자라다 보니 대학 야구 수준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 선수들에게도 대학은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학업과 야구를 병행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선수로서의 재능 부족을 느낀다면 야구 행정가나 구단 프런트, 스포츠 에이전시 등 다양한 길을 개척할 수 있다.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