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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시티팝 캐낸 젊은세대… 28년전 ‘아침’까지 소환시켰다

입력 | 2020-09-24 03:00:00

클래식 연주자 출신 유정연-이영경, 재즈 녹인 1집 앨범 남기고 사라져
LP시장서 각광받던 희귀앨범… 역주행 인기로 LP-CD로 재발매
“당시 2집 작업에 김현철도 낄 뻔”
내년 2집 내고 첫 콘서트도 계획




이달 초 재발매된 아침 1집. 오래전 품절돼 한때 중고시장에서 고가로 팔렸다. 사운드 트리 제공

‘깨끗한 느낌 내게 보여준 싱그러운 아침햇살처럼…’(아침 ‘숙녀 예찬’ 중)

손에 잡힐 듯 귀를 때리는 상쾌한 리듬. 세련된 화성, 다분히 재즈적인 스틸 드럼 연주…. 1992년 ‘아침’ 1집에 실린 곡 ‘숙녀 예찬’은 도입부부터 당대의 음악가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이제 이 사운드를 넘어서야 한다’가 고수들의 지상 과제가 됐다. 당시 김현철, 윤상, 이문세 등 라디오 DJ들이 입에 침을 튀기며 이 음악을 앞다퉈 틀었다. 그러나 서울대 기악과 출신 선후배인 유정연(55), 이영경(57)이 의기투합한 듀오 아침은 단 한 장의 앨범(‘…Land of Morning Calm’)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비운의 그룹 ‘아침’이 무려 28년 만에 다시 뭉쳤다. 중고 LP 시장에서 각광받던 이들의 유일한 앨범을 이달 초 CD와 LP로 재발매했다. 음반사의 20대 직원이 이사에게 “요즘 또래들 사이에 이거 핫한데 어때요?” 하고 제안한 게 도화선이 됐다.

17일 서울 강남구의 ‘사운드 트리’ 녹음실에서 만난 두 멤버는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져준다고 하니 얼떨떨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현재 유 씨는 탱고 바이올리니스트, 이 씨는 재즈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김현철, 빛과 소금, 봄여름가을겨울…. 이른바 세련된 한국적 시티팝(city pop)을 몇 년 전부터 금광처럼 캐낸 젊은 세대가 마침내 아침까지 닿은 것이다.

“우리가 어떤 흐름을 주도한다는 느낌을 당시에 자각하진 못했어요. 그저 재즈 마니아로서 세련된 가요를 만들고 싶다는 공통점 하나로 우르르 몰려다녔죠.”(아침)

유 씨는 “아침 1집을 들은 김현철이 ‘만나고 싶다’고 전화를 했고, 의기투합해 아침 2집은 김현철까지 3인조로 가려 했지만 당시 여건이 따라주지 않았다”고 했다.

아침의 시작은 재즈 사랑이었다. 클래식 바이올린 학도였지만 오스카 피터슨,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의 음악에 관심이 많던 유 씨는 선배 이 씨가 연주하던 이태원 클럽에 자주 드나들었다.

“영경이 형은 클래식 피아노로 수석입학을 했고 ‘올댓재즈’의 메인 피아니스트였어요. 일본 프리재즈의 전설적 피아니스트 야마시타 요스케도 형을 극찬할 정도였죠. 제가 클럽에서 꾀어냈어요.”(유정연)

“악보도 없어 듣고 채보하는 식으로 정통 재즈만 파던 참이었어요. 클래식과 재즈를 접목해 새로운 색깔을 찾고 싶다는 욕구를 풀 파트너로 정연이가 적격이었죠.”(이영경)

보컬은 유 씨가 직접 맡았다. 그는 조수미 신영옥이 사사한 국내 합창 지휘계의 거목인 고 유병무 선생(2월 별세)의 아들이다.

앨범 첫 곡을 연주곡 ‘아침의 나라’로 열 정도로 야심 찼던 듀오의 하루는 그러나 아침이슬처럼 짧았다. 멤버들은 “라디오는 좋았지만 TV는 우리와 영 맞지 않아 안 나갔다. 그게 상업적 실패에 작용했을 것”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이제야 ‘아침’의 첫 콘서트를 계획 중이다. 결성 29년 만. 내년 2월에 아침 2집을 내고 열 생각이다. 해체 뒤 유 씨가 1994년 혼자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현지 연주자들과 녹음했지만 빛을 보지 못한 미공개 음반이다.

유 씨는 해체 뒤 손지창, 이상우, 이문세, 신승훈 등의 작곡가로 활약했다. 해이의 ‘je t‘aime’, 핑클의 ‘영원’도 그의 작품. 남미 음악을 파려 2009년 브라질로 이주한 뒤 아르헨티나에서 2016년까지 거주하다 돌아왔다.

이 씨는 작곡가 박광현과 듀오 ‘데이지’로 활동했고 김현철의 ‘그대 안의 블루’, 윤상의 ‘너에게’에서 피아노 연주를 맡았다. 이후 재즈 피아니스트로 꾸준히 활동했다.

“다음 달부터 신효범 장기호(빛과 소금) 등과 저의 옛 곡들을 재해석해 내놓을 계획이에요.”(유정연)

“오랫동안 미뤄둔 제 솔로 1집도 내고 싶습니다. 오랜만의 아침 활동이 우리에게 참 큰 모티프가 되네요.”(이영경)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