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블루 칼라’ 노동자 옷서 유래
데님-캔버스 등 견고한 소재 사용
재킷-셔츠 등 다양한 연출 가능
치노팬츠-워커 등과 잘 어울려
아침저녁으로 쌀쌀함이 느껴지니 가을이 성큼 다가온 듯하다. 차려 입을 일이 줄어들어 패션을 즐길 수 있는 날들이 그리 많지 않지만 가을은 기다려지는 계절이다. 기온이나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패션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가을을 즐기기 위해 조금은 낯선 이름의 ‘초어 재킷’을 소개할까 한다.
집안일 등 일상적인 일을 뜻하는 초어(chore)에서 유래한 초어 재킷은 많은 일상복이 그러하듯 군복, 작업복 등 유니폼에서 출발한 클래식 아이템이다. 산업혁명 이후 19세기 말 대량생산과 기계문명이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효율성을 고려한 튼튼하고 기능적인 작업복이 다수 등장했다. 당시 프랑스의 ‘블루 칼라’ 노동자들은 ‘블루 드 트라바일(Bleu de Travail)’이라는 청색 작업복을 입었다. 초어 재킷의 원형이 된 이 프렌치 작업복은 튼튼하면서도 촉감을 부드럽게 가공한 청색 몰스킨 소재를 주로 사용했다. 지금까지도 ‘르몽셀미셀’, ‘베트라’ 등 프랑스 브랜드에서 예전 디자인 그대로 생산되고 있는데, 데님이나 코튼 트윌 소재, 히코리 스트라이프 등의 견고한 소재가 주로 사용된다. 또 큼직한 여러 개의 아웃 포켓 등 단단하게 고정된 실용적 수납, 여유 있는 핏 등이 특징이다.
활동하기 편한 넉넉한 실루엣으로 노동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업복 재킷은 곧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전해졌다. 당시 대표적 워크웨어 브랜드였던 칼하트는 데님을 활용해 블루 재킷을 재현했고, 이후 브랜드의 대표 아이템이 된 캔버스 소재의 초어 코트를 선보였다. 코듀로이 칼라를 덧대고 3중 스티치를 추가한 이 견고한 재킷은 초어 재킷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디자인의 작업복 아이템이 빠르게 보편화됐다.
실용적 목적으로 고안된 이 클래식한 아이템은 모던함과 캐주얼함을 동시에 갖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이어져 온 클래식 워크웨어는 옷장을 간결하게 꾸리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뉴욕타임스 소속 스트리트 패션사진가 빌 커닝햄은 초어 재킷을 자신의 아이콘으로 활용했다. 블루 컬러의 초어 재킷과 카키색 팬츠, 검은색 스니커즈 차림의 시그니처 룩으로 자전거를 탄 채 찰나의 스트리트 룩을 담아내려 뉴욕 거리를 누비던 생전의 그는 굉장히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특별히 의도한 차림은 아니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면서도 카메라로 완벽한 앵글을 잡아내야 했을 그에게 초어 재킷은 활동성과 편안함을 주는 최고의 아이템이었을 것이다.
별도 안감이 없는 초어 재킷은 요즘 유행하는 ‘셔킷’처럼 때에 따라 재킷과 셔츠 어느 쪽으로도 연출이 가능하다. 블루와 데님, 덕 브라운 등 상징적인 컬러 외에 에크루, 카키, 블랙 등 매치하기 쉬운 컬러로 제안돼 코디도 수월하다. 재킷 안에 라운드넥 티셔츠를 받쳐 입으면 데님, 치노 등 캐주얼 하의와 잘 어울린다. 여유 있는 실루엣의 카키색 퍼티그 팬츠와 캐주얼한 셋업처럼 연출할 수도 있고, 레이스 업 디테일의 워커와 함께 코디해 워크웨어의 터프한 매력을 뽐낼 수도 있다. 가을이 깊어지면 퀼팅 베스트를 겹쳐 입거나 겨울철 코트 안에 카디건 대용으로 겹쳐 입는 것도 초어 재킷을 활용하는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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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방식이 유연화되고 다양한 근무 형태가 등장하는 최근의 변화로 실용적인 패션 아이템이 주목받고 있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옷장 속을 지킬 수 있다는 점에서 초어 재킷은 가을철 필수 아이템이다. 갈수록 짧아져 더 소중해진 가을, 초어 재킷으로 실용적인 클래식의 멋을 한껏 즐기길 바란다.
임지연 삼성패션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