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한라산 고산식물’ 모니터링 필요하다

입력 | 2020-09-25 03:00:00

한라솜다리 등 멸종위기종 식물, 개체수 적어 기후변화로 사라져
백록담 특산식물 연구도 지지부진… 지속적인 연구와 복원 병행돼야




한라산 고지대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인 한라장구채와 한라솜다리, 한라송이풀, 제주황기, 제주달구지풀, 한라고들빼기(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한라장구채, 한라솜다리, 한라송이풀은 현재 멸종 우려가 높은 상황이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20일 오전 한라산 최정상인 백록담 분화구.

고산지대는 늦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겼다. 야생화는 결실을 서두르며 긴긴 겨울채비를 했다. 한라돌쩌귀는 보랏빛이 선명했고 한라고들빼기는 계곡 사면에 노란빛을 뽐냈다. 한바탕 흰 꽃을 피웠던 구름떡쑥은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다. 눈개쑥부쟁이는 연보랏빛으로 주위를 물들였다. 이들 꽃은 한라산의 대표적인 고산 특산식물로, 백록담의 경관을 더욱 다채롭게 하는 주인공들이다.

백록담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고산 특산식물 가운데 한라솜다리, 한라송이풀, 한라장구채 등은 세계적으로 한라산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종으로 등재됐다. 하지만 이번 답사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다. 산악인을 상징하는 꽃으로 알려진 한라솜다리는 백록담 분화구 사면에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2004년 자생지 복원 사업이 펼쳐졌던 한라장구채는 6년 전 4포기가 확인됐지만 이번에는 보이지 않았다.

한라송이풀 역시 자생 현장을 찾을 수 없었다. 국립생태원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보전계획에 따라 한라산 백록담의 한라송이풀에 대해 조사하고 있으나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자생지를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식물연구가들도 “최근 답사에서도 백록담 특정 지역에만 자생하는 한라송이풀은 물론이고 한라장구채, 한라솜다리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들이 한라산에서 사라지면 세계적으로 자생의 상태를 볼 수 없게 된다.

한라산 고산 특산식물은 개체수가 100포기 이내로 적은 상황에서 기후변화와 자연현상에 따른 자생지 붕괴, 훼손지 복구로 인한 환경 변화, 인위적인 무단 채취 등으로 멸종위기에 직면하거나 사라진 상황이다.

백록담 특산식물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않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20년 전 한라산 고산식물을 다룬 논문이 여러 편 나오면서 관심이 높았으나 최근 10년 동안 관련 논문은 극히 드문 실정이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관계자는 “해발 1900m 이상인 백록담 일대에서 현장 답사를 자주 하기가 쉽지 않고 개화나 결실 기간이 짧아 연구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제주지역 전체 식물상은 1819종, 121변종, 50품종 등 1990분류군으로 집계됐다. 한라산 정상 일대 고산식물 146종 가운데 42종은 한라산에 적응하며 진화한 특산종으로 구분된다. 이들 고산식물은 대부분 빙하를 피해 남쪽으로 이동했다가 정착한 식물의 후손인 ‘빙하기 유존종’이다.

한라산 고산지대는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이어지는 적설기와 강하고 지속적인 바람이 식물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알타이 식물 답사기, 알타이에서 만난 한라산 식물’을 펴낸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이사장은 “한라산 빙하기 유존종은 온난화를 거치면서 점차 소멸했지만 일부는 캄차카를 위주로 한 시베리아, 몽골 알타이와도 비슷한 분포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한라산 고산식물이 멸종하기 전에 지속적인 연구와 복원 등을 통해 자원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