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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당분간 올스톱… 北 사과 가능성도 희박 ‘시계 제로’

입력 | 2020-09-25 03:00:00

[北, 우리 국민 사살]
北,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모자라 민간인 사살로 최악 상황 초래
책임자 처벌 등 응분 조치 안하면 정부, 대화 명분 찾기 쉽지 않아
내달 폼페이오 美국무 방한해도 北美간 극적 이벤트 연출 힘들어




해병대 장병들이 24일 인천 옹진군 대연평도에서 해안 순찰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이 북한군에 의해 총살당하고 불태워진 사건과 관련해 우리 군의 경계태세 강화를 지시했다. 연평도=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북한이 표류하던 우리 국민을 사살하고 시신을 불태운 사건으로 한반도 정세가 다시 급속도로 얼어붙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한 가운데 10월 초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한으로 정부가 기대하던 한반도 ‘10월 서프라이즈’도 물거품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사건으로 남북관계는 사실상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됐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지난해 2월 ‘하노이 결렬’ 이후 북한은 그해 3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자국 인원을 돌연 철수시켰다가 복귀시키는가 하면 같은 해 10월엔 금강산 관광시설을 철거하겠다고 위협하는 등 남북관계의 문을 닫아걸기 시작했다. 정부의 잇따른 대화 제의를 외면하던 북한은 올해 들어 각종 고위 당국자들의 연쇄 담화를 동원한 ‘말 폭탄’을 쏟아내며 압박 수위를 더욱 높였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군사행동을 경고한 데 이어 6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키는 초강수를 두며 사실상 남북관계를 벼랑 끝으로 끌고 갔다. 이후 남북관계는 김 위원장이 김여정의 대남 군사행동 계획에 제동을 걸면서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북한이 해상에서 표류하던 한국 국민을 별도 재판 절차도 없이 현장에서 사살한 것도 모자라 시신을 불태우면서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로 접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민간인을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만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도 비교하기 어려운 파장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청와대와 국방부가 이날 ‘반인륜적 행위’ ‘책임자 엄중 처벌’을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이 한국의 재발방지 및 책임자 처벌 요구에 응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분간 정부가 남북 대화 명분을 찾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관측대로 10월 초 방한한다고 해도 북-미 간 극적인 이벤트가 연출될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평가도 뒤따라 나온다. 이번 피격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진 정부 안팎에선 폼페이오 장관이 한국에서 북-미 대화 재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게 나왔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핵 문제가 실질적으로 해결되는 걸 보여줄 수 없다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선거에 도움이 안 된다. 북한과 관련된 ‘10월 서프라이즈’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더 나아가 김 위원장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과시하며 “재선되면 북한과 빠르게 협상하겠다”고 공언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재선된다고 하더라도 남북 관계 개선 동력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남북 간) 모든 게 ‘올스톱’ 될 듯하다. 북한이 납득할 만한 사과를 하지 않는 한 올해 말까지 경색된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고, 내년에도 새로운 시도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한국에 오면 북한에 대해선 의례적인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는 수준의 메시지 발신에 그칠 거란 전망이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폼페이오 장관은 원칙적인 이야기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27일 방미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특별대표 등을 만날 예정이다. 외교부는 “(한미가) 현 상황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에 진전을 가져오기 위한 협력 방안 등 폭넓은 협의를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교당국은 이번 사건도 한미 협의의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기재 record@donga.com·최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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