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섭 강남제이에스병원 원장
2014년 1월 거스 히딩크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국내 한 병원에서 무릎 수술을 받았다. 히딩크 전 감독은 오래전부터 무릎이 좋지 않았다. 네덜란드에서 수술도 받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통증이 심해졌고 무릎을 굽히기도 쉽지 않았다.
그를 수술한 의사는 송준섭 강남제이에스병원 원장(50)이다. 송 원장은 2007년부터 10여 년 동안 대한축구협회 주치의를 맡았다.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이 원래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는 아니었다. 히딩크 전 감독이 인공 관절 수술을 검토하던 차에 송 원장이 다른 방식으로 수술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만남이 성사됐다.
●“스포츠 의학의 최고 강자”
송 원장에게 진료를 받겠다며 전국에서 오는 환자가 꽤 많다. 히딩크 전 감독의 수술 성공 소식이 한몫을 했겠지만, 사실 송 원장은 스포츠 의학 분야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의사다.
2019년 백두장사를 거쳐 천하장사에 등극한 장성우 선수도 송 원장의 손길을 거쳤다. 장 선수는 고3이었던 2015년 2월, 연골이 뼈에서 떨어져나가는 병(박리성 골연골염) 4기 판정을 받았다. 몇 군데 병원을 다녔지만 의사들은 씨름을 포기하라고 했다. 장 선수는 마지막으로 송 원장을 찾았다.
2016년 리우 올림픽 펜싱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박상영 선수도 송 원장의 환자였다. 박 선수는 대회가 열리기 1년 전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됐다. 인대 재건 수술과 재활 진료를 송 원장이 맡았다. 그 덕분에 박 선수는 올림픽에 나갈 수 있었고, “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국민에게 희망을 줬다.
송 원장은 요즘엔 골프 선수를 지원하고 있다.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소속 남자 선수 4명을 선정해 지난해부터 스포츠 손상을 봐 주고 있다. 골프 선수들은 손목이나 팔꿈치, 허리 부상이 잦다. 평소에 이를 체크해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해 주는 게 송 원장의 역할이다.
● 인공 관절 대신 줄기세포 치료
송 원장의 줄기세포 치료는 어떻게 이뤄질까. 우선 닳은 연골을 제거한다. 이어 뼈에 2㎜ 간격으로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제대혈 줄기세포 치료제를 주사한다. 그 치료제는 환자의 몸에 있는 자가 줄기세포를 자극해 연골로 분화하게 한다. 외부에서 들어온 줄기세포가 연골이 되는 게 아니라 환자 자신의 줄기세포가 연골로 분화하는 게 특징이다. 송 원장은 “자신의 세포를 이용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없다”고 말했다.
수술 후 6~8주는 생활에 불편을 느낀다. 목발이 필요하다. 3개월이 지나면 일상 생활로의 복귀가 가능하다. 완전히 연골이 원래대로 복원되려면 1년은 걸린다. 이때부터 스포츠 활동도 부분적으로 가능하다. 물론 체계적인 재활 프로그램이 병행돼야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연골 재생은 불가능하다는 게 의학계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송 원장은 도전했고, 성과를 냈다. 그동안 1700여 건의 수술을 했다. 이 중 3년 치 데이터 300여 건을 모아 4년 동안 추적 관찰한 뒤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올리기도 했다.
송 원장은 특히 50세 관절염 환자에게 제대혈 줄기세포 이식술을 권했다. 송 원장은 “그 정도면 중증이 아니라 인공 관절 수술도 망설여지고, 그러다 보니 그냥 방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 연령대의 경우 연골 생성률이 높기 때문에 검토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 “휜 다리도 줄기세포 치료”
이 사례를 포함해 송 원장은 줄기세포로 휜 다리를 교정한 125명을 추적 조사해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줄기세포 학술지인 ‘월드 저널 오브 스템셀’에 올 7월 등재됐다. 송 원장은 올해에만 4편의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게재했다.
강남제이에스병원에는 송 원장을 포함해 의사가 5명이다. 대학병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규모이지만 지금까지 6편의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발표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또 앞으로 연구소를 설립할 계획을 세울 정도로 연구 활동도 활발하다.
사실 송 원장은 원래 법조인이 꿈이었다. 약국을 운영했던 아버지의 한마디가 진로를 바꿨다. 아버지는 대충 약을 지어주는 법이 없었다. 약을 남용하는 손님에겐 “약 안 먹어도 낫는 병”이라고 잘라 말했다.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아픈 사람을 돌보고 살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의사의 길을 택했다.
송 원장이 본과 3학년 때 아버지가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두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투병 기간에 송 원장은 의사의 ‘민낯’도 많이 봤단다. 어떤 의사는 회진 때 무표정한 얼굴로 아버지를 보고는 돌아섰다. 어떤 인턴은 음식물을 삽입하는 관을 대충 꽂았다. 의식이 없는 환자를 배려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환자의 가족을 위로하려고 “오늘은 혈색이 좋으세요. 일어나시려나 봅니다”라며 용기를 북돋워주는 의사도 있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진 않았지만 고마웠다. 이후 송 원장에겐 철학이 생겼다. 의사가 환자 가족에게 구세주가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래서 새로운 치료법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게 의사의 길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단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