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사태와 ‘꿈을 파는 기업들’의 명암
테슬라, 누적적자 8조원 육박
니콜라는 수소 관련 실적 전무
韓개인, 두 회사에 5조원 투자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생소했던 이 두 이름은, 이젠 국민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다”고 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올해 상반기(1∼6월)부터 미국 주식 ‘직구(직접 구매)’ 열풍을 몰고 온 두 회사는 전기차와 수소전기차라는 ‘미래 산업’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기도 했다. 테슬라와 니콜라에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만으로도 국내 증권시장에서 관련 주가가 널을 뛰었고, 테슬라와 니콜라 경영진의 말 한마디에 투자자들의 희비가 갈렸다.
하지만 두 회사는 미래를 열었다는 공통점과 동시에 ‘거품’ 논란에 휩싸였다. 세계에서 전기차를 가장 많이 팔지만 2003년 창사 이래 누적적자만 67억8000만 달러(약 7조9000억 원)에 달하는 테슬라, 수소와 관련한 매출 실적이 전무하면서도 수소 업계의 대표처럼 일컬어지는 니콜라 모두 ‘모래 위의 성이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올해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공포 속에 대폭락했던 주식시장을 급반등으로 일으켜 세운 한국의 ‘동학개미’와 미국의 ‘로빈후드’ 등 개인투자자들의 관심도 이들에 쏠릴 수밖에 없다. 9월 22일 기준 한국 투자자들의 두 종목 투자 규모는 44억3655만 달러(약 5조1907억 원)에 이른다.
○ ‘미국 주식’이 일상이 된 ‘서학개미’
서울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 씨(30)는 올해 7월 초 테슬라에 투자를 시작해 현재 주식 100주를 가지고 있다. 김 씨가 국내 주식 대신 미국 주식을 택한 건 성장성 때문이었다. 코스피가 코로나19 여파로 3월 급락한 뒤 5월에 2,000 선을 회복했지만 상승세가 둔화되자 해외 증시로 눈을 돌렸다. 미 증시는 코로나19 폭락장 이후 테슬라, 애플 등 기술주를 중심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최근 미 기술주들이 고평가 논란으로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테슬라에 대한 김 씨의 신뢰는 여전히 두터운 편이다. 김 씨는 “오랜만에 장기로 투자할 해외 주식을 찾았다”며 추가 매수 의사를 밝혔다. 김 씨는 “최근 진성 주주로서 테슬라 모델3 차량을 구입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씨가 투자한 시점은 고점이었다. 곧바로 코닥 임원의 내부자 거래 소식이 흘러나오면서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주당 33.2달러까지 치솟았던 주가는 3거래일 만에 14.94달러까지 떨어졌다. 다급한 마음에 주식을 팔았지만 이 씨의 손에 남은 돈은 400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이 씨는 “좋다는 남들 말만 듣고 ‘바이오’ 종목에 투자한 게 문제였다”며 후회했다. 기술주와 바이오 등을 중심으로 가파른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었고, 상승 제한 폭이 없는 미국 증시의 성장성을 너무 믿은 탓에 위험 관리에 실패한 것이다.
○ “서학개미들은 웃을 수 있을까”
미국의 신흥 기술주 기업들은 서학개미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기존 산업계에 큰 충격을 던지며 투자자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장기적으로 산업계를 주도하며 지금과 같은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시각이 엇갈린다.
올해 들어 미국 전기차업체 테슬라와 수소트럭업체 니콜라 등 미국의 신흥 기술기업에 ‘서학개미’로 불리는 한국 개인투자자들의 뭉칫돈이 흘러들었다. 일각에서는 구체적 사업 성과 없이 ‘꿈’만 앞세우는 이들에 대한 과열 투자가 ‘거품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사진은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왼쪽)와 트레버 밀턴 니콜라 창업자 겸 전 CEO. 동아일보DB
특히 수소전기트럭을 발판 삼아 수소 공급과 수소차 수리 등 종합 수소업체를 표방한 니콜라는 10여 년 전부터 수소 기술을 개발해온 현대자동차그룹과 비교했을 때 수소 역량에서 큰 차이가 난다. ‘말뿐인 호재’에 기반해 급등한 니콜라의 주가는 공매도 전문 보고서 업체 ‘힌덴버그리서치’의 ‘사기 의혹’ 제기에 약 3개월 만에 주가가 최고치의 4분의 1로 폭락했다.
전기차 보급을 주도한 테슬라도 마찬가지다. 세단,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을 전기차로 잇따라 선보이자 ‘자동차 업계의 아이폰’으로 불리며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자동차 본연의 품질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JD파워의 ‘2020 신차품질조사’에서 테슬라는 신차 100대당 불만 건수가 250으로 업계 평균 166을 상회했다. 내년을 기점으로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폭스바겐, 현대차 등 제조 경험이 풍부한 자동차 업계의 전통적인 강자 기업들이 품질을 앞세워 쏟아낸다면 테슬라의 독보적 입지가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 기술 기업의 혁신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애플과 넷플릭스, 엔비디아 등 기존의 시장 선도 기술주들도 과거 부침을 겪었듯, 혁신 기업이 살아남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장경제는 소비자의 냉정한 선택에 의해 좌우된다”며 “테슬라 등이 여러 논란이 있지만 업계의 판을 바꾸는 도전적 시도만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다만, 문제는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세계 증시의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서학개미들의 ‘묻지 마 투자’가 큰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3월 말부터 8월 말까지 이어진 장기간의 기술주 폭등은 그 자체로 조정의 위험성이 있다.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사그라들지 않는 코로나19,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 격화 등 시장의 불확실성도 리스크 요인이다. 이들 신흥 기술주는 국내 증시에도 영향을 미친다.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LG화학, 니콜라에 1억 달러를 투자한 한화그룹, 최근 ‘사기 의혹’이 불거진 이스라엘 의료 진단장비 기업 나녹스의 2대 주주 SK텔레콤 등도 최근 주가 등락을 거듭했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23일 제22차 금융리스크 대응반 회의에서 “코로나19 확산이 지속되고 있고 세계 경제가 아직 회복되지 못하고 있어 미국 대선 등을 계기로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른바 ‘빚투’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개인투자자가 영혼까지 끌어모아 무리하게 대출받아 주식에 투자한다는 ‘영끌 빚투’가 자칫 국내 금융시장 붕괴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개인의 해외 주식 직접투자 규모는 지난해 말과 비교해 2배 이상으로 증가했고, 투자 자금은 대부분 신흥 기술주에 편중돼 있다.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도 16일 자본시장연구원의 개원 23주년 기념 온라인 콘퍼런스에서 “주식시장 가격이 전망보다 좋다 보니 실물과 금융 간 불일치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백신 개발이 연기되면 시장이 실망하고, 자산 가격이 크게 조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실체가 뒷받침되지 않는 꿈은 영원할 수 없다’는 경고인 셈이다.
서형석 skytree08@donga.com·김자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