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 피살된 사건과 관련해 “일어나선 안 될 유감스럽고 불행한 일”이라며 “정부로서는 대단히 송구한 마음”이라고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사과에 대해선 “각별한 의미로 받아들인다”며 남북 대화의 복원을 요청했다.
사건 발생 엿새 만에 처음 나온 대통령의 공식석상 발언인데 그 시간의 간격만큼이나 인식의 괴리도 크게 느껴진다. 그간 국민들은 북한의 만행에 대한 분노와 함께 우리 정부와 군이 과연 제대로 대응했는지 따져 물으며 문 대통령을 주시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관련 회의를 주재한 것은 사건 발생 닷새 만인 그제 안보관계장관회의가 처음이었다.
문 대통령 발언에서 북한에 대한 규탄이나 책임 추궁은 보이지 않았다. 유가족의 상심과 비탄, 국민의 충격과 분노를 언급했지만, 정작 유가족과 국민이 분노하는 북한의 민간인 사살과 수색작업 협박은 거론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김 위원장 사과를 “사상 처음이며 매우 이례적”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김 위원장도 심각하고 무겁게 여기고 있음을 확인했다”고도 했다.
이런 기류를 읽었다는 듯 군 당국은 어제 “우리 정보를 객관적으로 다시 들여다보겠다”고 했다. 북측이 우리 국민을 최초 발견하고 구조하려 했던 정황이 있었다는 새로운 정보도 내놓았다. 시신 소각 등 당초 발표의 신뢰도를 스스로 허물어뜨리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이러니 군이 북측 해명에 맞춰 정보를 수정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공동조사가 이뤄져도 실질적 검증 없이 정보만 맞춰보는 요식행위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을 보호할 책임과 함께 국민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 그동안 문 대통령은 보이지 않다 국민 분노가 한 고비 넘은 듯하자 수습을 강조하고 있다. 국정 최고책임자는 모든 결과에 책임져야 하지만 그 과정도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