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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김정은, 남북관계 파탄 원치않아”… 北만행은 언급 안해

입력 | 2020-09-29 03:00:00

[北, 우리 국민 사살]피살 6일만에 첫 입장 표명
김정은 사과에 의미 부여하며
“이번 사건 풀어나가는 데서부터 대화 불씨 살리고 협력 물꼬 터야”
與일각 “사과 메시지 너무 늦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이번 사건을 심각하고 무겁게 여기고 있으며 남북관계가 파탄으로 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8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북한이 25일 보내온 통지문에 담긴 김 위원장의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사과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북한이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원 이모 씨(47) 사살에 대해 “정당한 절차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한 언급 없이 김 위원장의 사과에 의미를 부여하며 남북대화 재개 필요성을 강조한 것. 문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이 사건에 대해 발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2일 피살 사건 발생 엿새 만이자 23일 문 대통령이 첫 대면 보고를 받은 지 125시간 30분 만이다.


○ 북한 통지문에 ‘각별히’ ‘이례적’ 강조한 文 대통령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아무리 분단 상황이라고 해도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라며 “희생자가 어떻게 북한 해역으로 가게 되었는지 경위와 상관없이 유가족들의 상심과 비탄에 대해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운을 뗐다. 이어 “국민들께서 받은 충격과 분노도 충분히 짐작하고 남는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국민의 신변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정부로서 대단히 송구한 마음”이라며 첫 사과 메시지를 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곧 북한의 사과에 대한 평가와 남북관계 복원 요구에 이날 메시지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특히 북한이 25일 김 위원장의 사과를 담은 통지문을 보내온 데 대해 문 대통령은 “각별한 의미”,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 당국은 우리 정부가 책임 있는 답변과 조치를 요구한 지 하루 만에 통지문을 보내 신속히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며 “사태를 악화시켜 남북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북한의 분명한 의지 표명으로 평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별히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 국민들께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해온 것에 대해 각별한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김 위원장 사과에 대해 여권이 일제히 반색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문 대통령도 “북측의 신속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던 전날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 결과보다 한발 더 나간 것이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에서 “외신은 ‘북한 지도자가 특정 이슈에 관해 남측에 사과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extremely unusual)’이라고 보도했고,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이는 도움 되는 조치’라고 평가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 “남북관계 진전 계기로 반전 기대”
문 대통령은 “이번 비극적 사건이 사건으로만 끝나지 않고 대화와 협력의 기회를 만들고,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계기로 반전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전날 제안한 공동조사와 군사통신선 복구 등을 통해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반전 계기로 삼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돌이켜보면 기나긴 분단의 역사는 수많은 희생의 기록이었다”며 “이번 사건을 풀어 나가는 데에서부터 대화의 불씨를 살리고, 협력의 물꼬를 터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북한에 사살된 공무원의 ‘희생’을 통해 대립 대신 협력의 길로 나가자는 의미다.

특히 문 대통령은 “비극이 반복되는 대립의 역사는 이제 끝내야 한다”며 유엔총회 연설에서 강조했던 한반도 종전선언의 추진 의지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역시 이날 화상으로 주재한 ‘제10차 한―메콩강 외교장관회의’에서 “남북미 간 대화가 조속히 재개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문 대통령의 첫 공개 발언을 두고 북한의 만행에 대한 규탄이 빠진 채 남북관계 개선에 방점을 찍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여당 관계자는 “사과 메시지가 너무 늦어진 느낌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효목 tree624@donga.com·한기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