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욱 신임 국방부 장관 /뉴스1 DB
북한군 총격으로 숨진 어업지도 공무원 A씨(47)에 대한 군 당국과 북한의 발표가 엇갈리면서 A씨의 행적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군 당국은 A씨가 월북을 시도하려 한 정황이 있고 북측의 총격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뚜렷한 이유가 드러나지 않아 의혹은 더 커지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선 A씨가 소속된 해양수산부 서해어업관리단과 그가 생활한 무궁화10호가 의혹의 실마리를 풀어줄 또 하나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29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해 보면 A씨는 처음부터 무궁화10호를 타지 않았다. 그가 처음 몸을 싣고 임무를 수행한 어업지도선은 무궁화13호. A씨는 9일 목포에서 무궁화13호를 타고 연평도 해역에서 임무 수행중이었다.
A씨는 5일 후인 14일 무궁화10호로 인사명령이 났다. 그는 16일 출항한 무궁화10호가 연평도 해역에 들어오자 목포로 복귀하지 않고 무궁화10호로 옮겨 탔다.
일각에선 인사명령이 나도 일단 목포로 복귀 후 인사명령이 난 어업지도선에 타는 것이 통상적인데, A씨는 특이하게 연평도 해역에서 배에서 배(ship to ship)로 이동조치 된 점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이를 두고 서해어업관리단 박정균 상황실장은 “인사명령에 따라 배에서 배로 이동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지만, 꼭 육지에 와서 교대를 하라는 규정도 없다”면서 “A씨가 무궁화13호에서 10호로 옮겨 탄 것은 A씨가 희망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경의 한 소식통은 “인사는 충분히 나올 수 있지만, 중국어선을 나포하는 급박한 상황도 아닌데, 서해어업관리단이 이례적으로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며 “9일부터 배를 탄 A씨가 25일 복귀하는 무궁화10호에 이동해 다시 임무를 수행한다고 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서해어업관리단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21일 0시부터 4시, A씨에게 무슨일이?
A씨는 무궁화10호에서 21일 0시부터 어업지도 업무 수행을 위해 당직근무를 섰다. A씨는 21일 오전 1시 35분쯤 동료들에게 문서작업을 한다며 조타실을 이탈했다. 그의 당직 근무 시간은 오전 4시까지였다.
그러나 동승한 선원들은 같은날 오전 11시35분쯤 A씨가 보이지 않자 선내와 인근 해상을 수색했으나 선상에서는 그의 신발만 발견됐다. 선원들은 이후 낮 12시51분쯤 소연평도 남방 1.2마일 해상에서 해경에 실종 신고했다.
이에 대해 서해어업관리단 박 실장은 “당직근무자 교대시 인원 점검은 필수지만, A씨가 근무했을 당시에는 인원 및 장비 점검, 중국어선 분포현황 인수인계 등 교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시인했다.
◇ 무궁화10호 폐쇄회로(CC)TV가 망가진 이유는?
군이 밝힌대로 A씨가 구명조끼를 입고 월북을 시도했는지, 아니면 유가족의 주장대로 실족을 한 것인지를 밝혀줄 유일한 단서인 무궁화10호 폐쇄회로(CC)TV는 16일 출항 당시 멀쩡했지만 A씨가 실종된 당시 고장이 난 상태였다.
해경 조사결과 CCTV가 고장난 사실은 무궁화 10호 ‘항해일지’에 기록돼 있다.
항해일지는 선박의 주요 기계가 고장 나면 기록하게 되어 있는데, A씨는 17일부터 무궁화 10호에서 근무했고 항해일지를 관리하는 일등 항해사였다.
서해어업관리단 관계자는 “A씨가 CCTV 고장을 직접 항해일지에 기록했는지는 확인이 안된다”면서도 “A씨가 항해일지를 관리하는 일등항해사였던 것은 맞다”고 말했다.
CCTV 파손 지점도 의구심을 증폭시킨다. 해경 조사결과 CCTV가 고장난 것은 무궁화10호 앞쪽과 뒤쪽을 바라보는 외부 CCTV가 아닌, 조타실내 CCTV를 통제하는 중앙 시스템 고장이었다. 이 부분도 해경이 디지털 포렌식 수사를 통해 밝혀내야 할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다.
때문에 일각에선 해경이 디지털 포렌식 수사 뿐만 아니라 무궁화10호가 출항한 16일 이전에 해당 어업지도선에 누가 방문했는지 등을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 A씨의 이동식 저장장치(USB)는 비어있어…해경 압수 물품에는?
29일 서해어업관리단과 해경에 따르면 해수부는 21일 실종된 A씨 소유 이동식 저장장치(USB) 3개를 해경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동식 저장장치 3개는 모두 비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궁화 10호에서 A씨의 USB 3개가 발견됐지만 일반 USB를 사용할 수 없는 환경에서 A씨가 해당 USB를 사용했는지 아니면 그냥 소지만 한 것인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A씨의 친형 이래진씨는 28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해경이 22일 연평도 해역에 정박한 무궁화10호에서 동생 수첩과 노트북 하드웨어, USB를 가지고 갔다”고 말했다.
해경은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통해 A씨가 저장매체로 무엇을 했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만약 저장매체에서 월북 또는 개인의 삶을 비관하는 내용 등이 밝혀진다면 흩어진 퍼즐 조각들이 맞춰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軍 A씨 구명조끼 입었다 vs 해경 단정 못해
국방부는 A씨가 지난 22일 북한 등산곶에서 발견될 당시 구명조끼를 착용한 상태였고 부유물에 의지하고 있었다고 발표했다. 이를 근거로 국방부는 A씨가 자진 월북한 것으로 봤다.
국방부는 A씨가 근무하던 무궁화10호에 비치된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에 뛰어들어 부유물을 잡고 헤엄쳐서 월북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해경은 A씨가 실종 당시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있었는지는 현재로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만약 A씨가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다면 친형 이래진씨가 주장한대로 월북이 아닌 실족사고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해군이 28일 오전 10시쯤 소청도 인근 해상에서 ‘구명조끼’ 같은 물체를 확인했다고 해경에 통보하면서 잠시 소동이 일기도 했다. 확인 결과 해당 물체는 구명조끼가 아닌 나무재질 물체와 오탁방지막으로 추정되는 주황색 플라스틱으로 파악됐다.
구명조끼 착용여부는 A씨가 월북을 했느냐 안했느냐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물품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만약 A씨가 구명조끼 착용을 하지 않았다면 국방부의 발표는 거짓이 된다.
현재까지 A씨가 착용했다던 구명조끼 출처는 오리무중이다.
해수부 규정에 의하면 499톤인 무궁화10호의 정원은 19명, 규정상 비치해야 할 구명조끼는 29벌이지만 구명조끼는 이보다 훨씬 많은 85벌이 비치돼 있다.
무궁화10호에 비치된 구명조끼는 두 가지로 사용연한이 각각 8년, 10년이다. 관련 규정은 구명조끼의 사용연한이 지나거나 훼손될 경우 반납하고 새로운 제품을 받도록 하고 있다. 반납할 물량과 새 제품을 1대 1로 교환하는 방식이다.
선박은 출항 전 구명조끼 등 안전장비 수량, 이상 유무 등을 반드시 파악한다. 안전장비가 규정보다 적은 경우 처벌을 받기 때문인데 규정보다 수량이 많을 땐 문제가 되지 않아 이를 등한시하기도 한다. 무궁화10호 승선원들이 애초 구명조끼가 몇 벌인지 몰랐을 가능성이 대두되는 이유다.
이 경우 A씨가 배에 비치된 구명조끼를 착용했어도 파악하기 힘들어진다. 실제로 지난 24일에 이어 이날까지 이틀에 걸쳐 무궁화10호와 승선원들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는 해경은 A씨가 착용했다는 구명조끼 출처에 대해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인천=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