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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주장과 다른 해경의 “월북” 판단…여전히 남는 의혹들

입력 | 2020-09-29 17:46:00


윤성현 해양경찰청 수사정보국장이 29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해양경찰청 회의실에서 연평도 실종공무원 중간 수사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0.9.29/뉴스1 © News1

해양경찰청이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뒤 북한군에 의해 피격된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원 이모 씨(47)가 29일 월북했다고 판단한 결정적인 이유는 전날 국방부를 방문해 취득한 정보였다고 밝혔다. 해경은 이 씨의 피격 소식이 알려진 직후 이 씨의 금융거래 내역을 추적하는 등 실종 경위를 확인하기 위한 수사를 해왔다.

●해경 “인위적 노력 없이 갈 수 없는 위치”
윤성현 해양경찰청 수사정보국장은 이날 중간 수사 브리핑을 통해 “이 씨가 북측 해역에서 발견될 당시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있었고, 북측이 이 씨의 이름과 나이 고향 등 인적 사항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이 25일 통일전선부 명의로 보낸 통지문에서 “처음 한두 번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얼버무리고는 계속 답변을 하지 않았다”는 북측 설명과도 다르다.

이 씨가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던 점을 감안할 때 어업지도선에서 단순히 실족했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이 해경의 시각이다. 이 씨는 구명조끼를 입은 채 1m 이상 크기의 부유물에 의지해 북쪽으로 이동했다. 해경은 국방부가 입수한 자료를 통해 부유물이 사람 키의 절반에 가까운 1m 길이로 엎드린 상태로 충분히 발을 저을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다만 해경은 해당 부유물의 사진을 본 것은 아니어서 색깔이나 정확한 크기는 확인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해경은 “국립해양조사원과 국립해양과학기술원,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등 국내 4개 기관이 분석한 표류 예측 결과 등을 종합해 볼 때 이 씨가 월북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4개 기관의 분석 결과 이 씨의 실종 당시 서해안의 조석과 조류 등을 고려할 때 단순 표류일 경우 소연평도 주변을 시계반대 방향으로 돌며 남서쪽으로 표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씨는 표류 예측 결과에서 북서쪽으로 18해리(33.3km) 이상 떨어진 북한 등산곶 인근 해역에서 피격됐다. 인위적 노력 없이 피격 지점까지 표류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 해경의 시각이다.

해경은 “어업지도선 현장 조사와 동료 진술 등을 통해 선미 갑판에 남겨진 슬리퍼는 실종자의 것으로 확인했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해 유전자 감식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선내 폐쇄회로(CC)TV는 고장으로 실종 전날인 20일 오전 8시 2분까지 동영상이 저장돼 있었고, 저장된 동영상 731개를 분석한 결과 실종자와 관련된 중요한 단서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 “월북 판단된다” 해경, 모든 가능성 수사

수산계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0년 이상 어업지도원 1등 항해사로 근무한 이 씨는 연평도 주변 해역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조류를 잘 아는 이 씨가 최단경로를 벗어나 33.3㎞의 망망대해를 구명조끼와 부유물에만 의지해 북측으로 자진 월북했다는 주장은 여전히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월북을 결심한 이 씨가 가족 등에게 남긴 편지가 전혀 없는 점도 의혹으로 남는다. 이 씨는 21일 자정부터 당직 근무에 들어갔는데 바로 직전에는 휴대전화로 아들과 통화를 하면서 “공부 열심히 하라”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씨가 3억3000만원 정도의 채무가 있었으며, 그 중에 인터넷 도박으로 2억6800만원 정도의 채무를 졌다는 해경은 설명에도 의구심이 생긴다. 공무원 신분에 자녀 2명이 있는 가장이 월북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해경도 단순히 채무가 있었다는 정황만으로 월북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해경은 이 씨가 이혼 상태지만 금전 관계를 제외하고는 동료 관계 등에서 별다른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해경은 월북 외에도 극단적 선택과 실족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당분간 수사를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인천=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