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라시마 교수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종목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가 일제강점기에 겪었던 시련을 학생들에게 설명한 후 마지막으로 손기정의 자서전을 읽어주었다. “마라톤 우승은 나의 슬픔, 우리 민족의 슬픔을 뼈저리도록 되새겨주었을 뿐이었다. 나라가 없는 놈에게는 우승의 영광도 가당치 않은 허사일 뿐이었다. 나라를 가진 민족은 행복하다. 제 나라 땅 위를 구김 없이 뛸 수 있는 젊은이들은 행복하다. 그들을 막을 자가 과연 누구인가?” 그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마음이 아파 울었다. 손기정이 누구였던가. 올림픽의 꽃인 마라톤에서 우승했을 때는 일본 국기를 가슴에 달고 일본 국가를 들어야 했고, 여의도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환영행사는커녕 형사들에게 범죄자처럼 끌려가야 했던 조선 청년이었다.
그러나 손기정은 광복 후에도 증오를 품지 않았다. 오히려 스포츠가 국경을 넘어 서로의 마음을 이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공동 개최를 응원한 건 그래서였다. 그는 스포츠를 통해서 두 나라가 어떻게든 화해하고 공생의 길로 갔으면 싶었다. 데라시마 교수가 그를 강의의 중심에 놓은 이유였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