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 장관 아들 사건의 본질은 권력형 부패, 대통령도 지적한 권력의 사유화 ● 추 장관 개입 여부, 아들 비호 위한 진술과 증거 조작 모두 특검과 국정조사 대상
추미애 법무부장관. [뉴스1]
‘사건은 사건으로 덮어 버리면 망각 효과를 얻는다.’
우리 공무원을 총살한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는 시기에 느닷없이 발표된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수사 결과를 보면 이런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추 장관 아들 수사 결과에 비난 여론이 일면 북한 만행이 잊혀질지도 의문이지만 추 장관 아들 수사도 이 단계에서 덮고 넘어갈 수 있을까.
‘부실’ 또는 ‘고의 은폐’
추 장관 아들 서씨의 휴가 특혜 의혹 규명은 간단한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9개월간 수사를 끌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검찰은 사건 배당 후 3개월 이내 사건처리를 원칙으로 한다. 그 기한 내에 처리되지 않는 사건은 특별히 관리된다. 매년 실시되는 검찰 사무 감사에서도 3개월을 넘긴 장기미제 사건은 수사검사의 근무평정을 위한 중요한 기초자료로 평가받는다. 그런 사실을 잘 아는 검찰이 별다른 이유 없이 수사를 9개월(269일)간 진행한 끝에 무혐의 결정을 내린 이유는 무엇인가. 수사가 지연되는 사이 사실 관계를 객관적으로 증명해 줄 국방부 자료와 미 2사단 부대 일지가 없어지거나 빛을 보지도 못했다. 이 자료가 세상에 다시 나오는 날 검찰 수사는 그대로 ‘부실’ 또는 ‘고의 은폐’로 판명될 것이다.
이런 판을 예상한 듯 추 장관은 검찰 역사상 볼 수 없었던 인사 전횡과 조직 파괴로 검찰을 철저히 무력화시킨 장본인이다. 문재인 정권의 살아 있는 권력수사에 관여했던 검사들은 예외 없이 좌천시켰고 그 중 상당수 검사는 검찰을 떠났다. 형사부와 공판부 강화를 명분으로 직접 수사 부서를 대거 없애며 검찰의 팔다리를 잘라 버렸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철저히 고립시키며 식물총장으로 만들었다.
무혐의 수사 종결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민주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법치주의다. 법치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률제도가 정당하고 권위를 갖추었다고 인식되고 그것이 일반 시민 뿐 아니라 힘 있는 권력자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된다는 국민의 신뢰다. 그 법이 누구에게 적용되는지를 따지지 않고 법치주의를 말할 수 없다. 추미애 장관 아들의 군 복무 특혜 의혹을 둘러싼 논란은 과연 법은 누구의 편이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근본적인 물음을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다. 검찰개혁을 외치는 집권 여당 대표 출신 법무부장관의 공정과 정의는 과연 무엇인지 국민들이 또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불편부당 엄정공평은 검찰이 갖추어야 할 제1의 덕목이다. 국가형벌권이라는 막중한 권한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아 행사하는 검찰이 공정하게 이를 행사하지 않을 때 그 정당성의 토대가 무너진다. 가장 근본적인 의미의 법치주의는 우리의 법은 정당하고 통치자가 아닌 법이 주권자라는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한다. 법을 따르는 까닭은 그 법과 법집행기관이 공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보좌관이 다 했고 나는 모른다”
정의의 여신상. [동아DB]
문재인 대통령도 저서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정권의 유지?존속과 개인의 이익을 위한 권력의 사유화를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특권층이 반칙을 저질러도 용납되던 시대, 반칙해서 얻은 승리가 용인되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역설한 바 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그 가족을 둘러싼 불법과 비리에 이어 터져 나온 추 장관 아들 관련 비리 의혹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런데 추 장관 본인의 해명과 집권 민주당의 행보는 국민의 상식과 한참 떨어져 있다. 아포리아는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것이 없는 막다른 곳에 다다랐음’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다. 대한민국의 정의와 법치주의가 진정 아포리아 상태에 빠진 것인가.
추 장관은 이미 검찰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에 치명적인 역사적 오점을 남겼다.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검찰을 직권남용 수준의 인사농단으로 정치권력에 예속시켰고 수사지휘권 발동을 통해 정권의 직접 수사개입이라는 나쁜 선례도 남겼다. 정권이 총동원된 ‘추미애 장관 구하기’는 공정과 정의라는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하고 국민의 분열과 냉소를 불렀다. 늦었지만 추 장관은 지금이라도 장관직 사퇴를 포함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법무부장관으로서 부끄럽지 않으려면 국민 앞에 서지 말아야 한다.
추 장관이 물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이 사건이 덮어지진 않을 것이다. 이 사건을 무혐의 처분하는 과정에서 추 장관과 측근 검사들의 개입 여부, 진술과 증거를 은폐하거나 왜곡한 관련자들, 당직사병과 지휘관에 대한 여권 인사들의 모욕 행위 등은 모두 국정조사나 특검 수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 추 장관을 봐주거나 감싸기를 시도하는 것은 자충수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김종민 (변호사, 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