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 기정사실 주장하다가 김정은 사과에 잔치 분위기” ●“세월호 사건 때 박근혜에 욕 퍼붓다가 제천 화재엔 유족들에게 망언” ●“북한 만행엔 관대, 일본에는 적대적 태도”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공무원이 승선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10호가 9월24일 오후 해양경찰의 조사를 위해 대연평도 인근 해상에 정박해 있다. [뉴스1]
첫째, 바다에서 표류 중인 우리나라 공무원을 북한 경비병이 사살한 뒤 시체를 불태웠다.
둘째, 해당 공무원이 기진맥진한 채 북한군의 위협을 받는 6시간 동안, 우리 군은 구조를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수수방관했다.
대통령이 뭘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정상적인 국민이 북한의 도발에 분노하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우리 정부를 비판하는 동안, 문대통령의 열성 지지자, 소위 ‘문빠들’이 보인 초기 반응은 ‘당황’이었다. 모든 사안을 문통(문재인 대통령)에게 유리하냐, 불리하냐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그들에게 이번 사건은 심각한 악재였으니 말이다. 이 상황에서 필요한 건 비판 여론을 잠재우고 시간을 버는 것, 그래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직 사실관계가 드러나지 않았으니 좀 기다려 보자.” “네가 말하는 게 팩트 맞아? 근거 있어?” 일부는 이 사건을 북한의 일방적인 도발로 규정함으로써 문통을 보호하려 했다. “북한은 코로나 때문에 접경지역에 접근하는 즉시 사살하고 있는데, 이게 우리 정부랑 무슨 상관이냐?” 문빠 사이트로 유명한 클리앙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북한군에 사살된 피해자 건은 대통령과 무관하다. 이번 사건에서 대통령이 뭘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문빠들이 이런 식으로 시간을 버는 동안 정부. 여당은 사건을 반전시킬 공작을 꾸몄으니, 그건 바로 ‘공무원이 월북하려 했다’였다. 그 공무원에겐 빚이 2000만 원이나 있었고, 상습적인 도박을 하고 있었으며, 이혼에 월급까지 가압류당하는 상태였단다. “이런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한 채 월북했다”는 게 정부. 여당의 주장이었다. 물론 그들이 아무런 근거 없이 이런 공작을 꾸민 것은 아니다. 군의 감청자료에 의하면 해당 공무원이 북한군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월북’이란 말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가족들과 동료들은 월북 가능성을 일축하는 데다, 바다에서 표류하던 이가 총을 든 북한군을 만났을 때 생존전략으로 월북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오직 문통의 안위만을 최우선으로 하는 문빠들에게 이런 의혹은 중요하지 않다. 그 공무원이 자기 혼자 월북하다 총을 맞은 것이라면, 정부의 책임은 덜어질 수 있으니까. 사실관계 운운하던 초기 단계의 신중함은 사라지고, 문빠 커뮤니티는 ‘빚 때문에 월북’이란 글로 도배된다. 누군가 ‘그 정도 빚 때문에 월북하느냐?’며 이의를 제기하면, 문빠 여럿이 달려들어 핀잔을 준다. “저도 30년 전 GP 근무할 때 월북한 이들을 몇 명 봤는데, 대부분 빚이나 범죄에 관련된 사람이었습니다.” “나도 그런 애들 여럿 봤습니다.” 이런 명백한 사례들 앞에서 공무원의 월북은 기정사실이 된다.
박근혜 정권 시절에 일어난 세월호 사건 때 문빠들은 세월호가 침몰하던 시간에 제 자리에 없었다는 이유로 박 전 대통령에게 수십 톤의 욕을 퍼부어댔다. [뉴스1]
살수대첩에 비견되는 위대한 승리
9월 25일, 놀랄 만한 일이 생긴다. 북한 김정은이 이번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한 것이다. “북남 사이 관계에 분명 재미없는 작용을 할 일이 우리 수역에서 발생한데 대해 귀측에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아니, 그 ‘또라이’같은 김정은이 사과를 하다니? 문빠들은 이제 축제 분위기가 됐다. “월북 사건으로 추석 내내 문통 욕하고 선동하려 했는데 힘들어졌네요.” “충격적인 사건이라 언론과 야당의 공세가 거셀 것으로 봤는데 완전히 역전되어 버렸어요.” “어떻게 보면 진짜 위험하긴 했습니다. 진짜 훅 갈 뻔 했네요.” 물론 석연치 않은 점은 있다. 사과문에 담긴, 북한군이 신분확인을 요구했을 때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얼버무리고 계속 답변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은 월북설을 주장하는 우리 정부의 입장과 배치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김정은에게 사과를 받아낸 정권이 도대체 어디 있느냐며 문통 찬양가를 부르는 문빠들에게 이런 사소한 오류는 중요하지 않다. 게다가 청와대가 2주 전 북측과 교환했던 친서를 전격 공개하자 문빠들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쏟아낼 지경이었다. “아아, 문통님, 당신은 이렇듯 위대한 분이셨군요! 잠시나마 의심했던 저를 탓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건은 종결됐다. 야당과 보수언론이 월북하려던 공무원의 죽음을 이용해서 정권을 타도하려 했지만, 문통의 신통한 능력 덕분에 일망타진된 것이 이번 사건의 실체. 이미 수많은 승리를 거둔 문통이지만, 이번 싸움은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에 비견되는 위대한 승리로 역사책에 기록될 것이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59호에 실렸습니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