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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공항 정말 위험할까… 그래도 ‘신공항’? [이원주의 날飛]

입력 | 2020-10-02 08:03:00


동남권 신공항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올해 상반기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당시 코로나극복국민대책위원장(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이 부산을 찾은 자리에서 잇따라 가덕도 신공항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한 이후입니다. 현재는 부산 지역 언론을 중심으로 “김해 신공항은 부적절하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김해공항 국제선 청사 전경. 동아일보DB

대부분 현재 김해공항과 새로 건설될 김해공항 새 활주로의 안전성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입니다. ‘김해공항이 안전에 큰 문제가 있으니 가덕도에 새 공항을 지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이번 ‘날飛’에서는 이 같은 주장들이 적절한 주장인지 규정과 기술문서를 통해 짚어보고, 지역에서 주장하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 타당한지에 대해서도 함께 짚어보려 합니다.

●‘김해신공항’ 왜 나왔나

20년 가까이 정치적, 지역사회적 이슈가 됐던 동남권 신공항 논란은 2016년 국토교통부가 “김해공항에 ‘서클링 접근’이 필요 없도록 새 활주로를 짓겠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일단락됩니다. ‘서클링 접근’은 현재 김해공항에 비행기가 북→남 방향으로 접근할 때 북쪽의 산을 피해 U턴 하듯 내리는 방식입니다.

김해공항 북→남 방향 착륙 과정. 북쪽 지형 때문에 직선으로 접근하지 못합니다. 참조자료: 젭슨

국토교통부는 새 활주로를 서북-남동(32-14) 방향으로 비스듬하게 만들 계획입니다. 2016년 1년여 기간에 걸친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의 사전타당성 연구용역 결과에 따른 계획입니다. 김해공항-김해시 상공을 잇는 평지를 따라 비행기가 착륙할 수 있도록 하면 서클링 접근을 피하고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김해공항에 놓일 새 활주로 예상도. 자료: 국토교통부, 부산시




●“비행기가 산에 충돌”

그런데 김해공항 존치를 반대하는 부산, 울산, 경남을 중심으로 김해공항의 새 활주로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이들 지자체장들은 자체적으로 ‘부산·울산·경남 동남권 관문공항 검증단(부울경 검증단)’을 출범하고 ‘김해신공항’이 위험하다는 논리를 적극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역언론 보도도 대부분 이 부울경검증단의 주장을 인용한 보도입니다.

부울경검증단과 국토부가 주장하는 신설활주로 복행 절차. 부울경검증단은 공항 남동쪽 구덕산에 항공기가 충돌할 우려가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자료: 부산시

부울경검증단에서 가장 강하게 강조하는 위험은 “김해공항을 이용하는 비행기가 근처 산들에 충돌할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새 활주로를 만들면서 기존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비행기는 동쪽에 있는 금정산(801m)에, 기존 활주로에 착륙하다 착륙을 포기하고 다시 상승(복행)하는 비행기는 남쪽에 있는 승학산(388m)에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산 충돌을 피하기 위해 거금을 들여 만드는 새 활주로는 아무 의미가 없게 됩니다.

●같은 상황 다른 기준

다만 여기서 유의해 살펴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부울경 검증단이 착륙 단계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부울경검증단에서는 14활주로 방향으로 착륙하는 비행기가 복행할 경우 승학산에 충돌할 위험이 높다고 주장했습니다. 부울경검증단은 “최신 항법인 ‘성능기반항행’ 절차로 복행할 경우 회전반경이 넓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부울경검증단은 비행기가 활주로로 접근하는 과정에서는 ‘재래식’ 접근착륙 절차를, 비행기가 착륙을 포기하고 다시 상승하는 과정에서는 ‘성능기반항행’ 접근절차를 각각 적용했습니다.

부울경검증단은 접근시에는 ‘재래식 항법(ILS)을, 복행시에는 ’성능기반항행(PBN)‘ 방식을 각각 적용했습니다. 자료: 부산시

하지만 우리나라 모든 공항을 포함한 전 세계 공항에서는 ’성능기반항행‘과 ’재래식‘ 착륙 절차를 각각 구분해서 적용하고 있습니다. 성능기반항행으로 접근할 경우 복행도 성능기반항행 절차에 따르고, 재래식 접근착륙 절차를 사용할 경우 복행도 재래식 절차에 따르는 겁니다. 그리고 성능기반항행 절차를 따르는 비행기가 복행할 경우에는 재래식 절차에 비해 더 높은 고도에서 복행을 실시하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성능기반항행 접근절차의 정밀도가 재래식 접근에 비해 낮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은 아래 다시 다룹니다.

김해공항 남→북 활주로(36L)의 복행 고도. ’성능기반항행‘ 방식의 복행 고도가 재래식 접근 고도보다 더 높습니다. 자료: 국토교통부

따라서 성능기반항행 절차에서 이 복행고도(Decision Altitude, DA)를 적절하게 높게 잡으면 산에 충돌한다는 위험을 피해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대부분의 공항에서 성능기반항행 접근절차의 복행고도를 재래식 접근절차의 복행고도보다 약 2배 정도 높게 설정하고 있습니다.

●북쪽으로 이륙할 땐

부울경검증단에서는 또 새 활주로가 생기면 현재 있는 36활주로로 착륙하는 비행기 역시 복행할 때 북서쪽 금정산과 충돌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현재 36활주로로 착륙하는 비행기가 복행할 때는 산을 피해 왼쪽으로 방향을 틀도록 절차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항 왼쪽으로 새 활주로가 생기면 출발하는 비행기와 간섭이 생기기 때문에 국토교통부는 선회 방향을 오른쪽으로 바꾸는 복행 절차를 새로 만들고 있습니다.

김해공항 기존 활주로의 현재 복행절차(파랑)와 새로 만들어질 복행절차(주황). 신설 활주로의 진로를 가로막지 않기 위해 기존 방향과 반대로 날아갑니다. 자료: 국토교통부

그런데 부울경검증단에서 ’산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는 복행 절차와 비슷한 이륙 절차가 현재 김해공항의 표준출항절차(SID) 중에 이미 있습니다. 상승률(약 8%)과 진행 방향 등이 비슷합니다. 만약 산 충돌 가능성이 있는 절차라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상승률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다루겠습니다.

현재 김해공항에서 운용하고 있는 북동방향(LEEMA 2) 출항절차. 참조자료: 젭슨




●“너무 짧은 활주로”?

부울경검증단의 또 다른 김해신공항 반대 논리는 “활주로가 너무 짧아 대형기 이착륙이 어렵다”는 겁니다. 현재 김해공항의 긴 활주로(36L) 길이는 3200m인데 이 활주로 길이로는 대형기가 이착륙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또 남북에 위치한 산 높이 때문에 비행기가 7~8도의 상승각으로 상승해야 하는데, 이는 지나치게 위험하다고 부울경검증단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김해공항 활주로. 3200m와 2746m 활주로 2개를 씁니다. 자료: 국토교통부

하지만 3200m 길이 활주로에서 대형기 이착륙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보잉에서 펴낸 기술문서를 보면 이 회사의 가장 큰 여객기인 747-8 항공기의 경우 해발고도에 있는 공항에서 약 410t의 이륙 중량으로 약 3050m(1만ft) 길이 활주로에서 이륙이 가능합니다. 이 비행기의 설계상 이륙 가능한 한계 중량은 약 448t입니다. 또한 이 활주거리는 기온이 40도일 경우를 가정한 수치입니다. ICAO에서는 표준 이륙거리를 측정할 때 통상 기온이 15도일 경우를 가정하는데, 이 기준을 적용하면 1600m 길이에서도 이륙할 수 있습니다.

보잉社 최대(最大) 민항기인 747-8 항공기의 기술자료. 40도 온도에서 설계상 최대이륙중량의 90%를 채우고 3000m 활주로에서 이륙이 가능합니다. 자료: 보잉

실제 사례도 있습니다. 2017년 7월 15일 미국 국적의 화물기인 폴라에어 소속 보잉 747-8F 화물기가 준사고를 일으킨 사례입니다. 당시 이 항공기는 이 비행기의 최대이륙중량인 373t에 거의 근접한 367t 무게로 일본 나리타공항 16번 왼쪽(16L) 활주로에서 이륙했습니다. 나리타공항의 16L 활주로 길이는 2500m입니다. 당시 이 비행기는 활주로 끝까지 거의 다 질주한 상태에서 아슬아슬하게 이륙했고, 엔진에서 내뿜는 강한 배기가스가 활주로 끝단의 시설물을 부쉈습니다. 비행기는 별 탈 없이 이륙해서 목적지인 상하이로 날아갔고, 사상자도 없었습니다.

2017년 7월 일본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준사고를 일으킨 폴라에어 소속 747-8F 화물기(N852GT). 자료: 위키미디어

그런데 이 비행기는 원래 약 97%를 사용하도록 계산됐던 엔진 출력을 다 쓰지 않고 약 89%만 사용했습니다. 일본교통안전위원회가 항공기 기록장치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계산된 엔진 출력(97.2%)을 사용했다면 1640m 지점에서 이륙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당시 나리타 공항의 기온은 25도였습니다.

폴라에어 항공기는 97%를 써야 하는 엔진 출력을 8%포인트 덜 쓰고도 2500m 활주로에서 이륙했습니다. 자료: 일본교통안전위원회(JTSB)

활주로가 어느 정도 길이만 되면 대형기 이륙에 큰 문제가 없다는 근거는 국내 공항에도 있습니다. 활주로 길이가 2800m인 전남 무안국제공항은 2010년 보잉 747-400 기종이 이 공항에 이착륙할 수 있다는 인가를 받았습니다. 당시 무안공항은 활주로 증설 없이 소방설비를 보강하고 응급후송체계를 정비하는 절차만으로 국토해양부에서 대형기 운항 허가를 받아낸 바 있습니다.

747 기종 운용이 가능하게 됐다는 내용을 담은 무안공항 보도자료. 무안공항의 활주로 길이는 2800m입니다

활주로 길이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면서 ’2층 비행기‘인 A380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이 비행기가 계속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작사인 에어버스는 이미 이 기종에 대한 단종 절차에 들어갔고 해외 항공사들도 이 비행기를 속속 퇴역시키고 있습니다. 에어버스의 본고장 프랑스 국적 항공사인 에어프랑스에서 A380를 이미 완전히 정리했고, 루프트한자 등 다른 많은 항공사들도 수 년 사이에 이 비행기를 더 이상 쓰지 않을 예정입니다.


●“가파르고 위험한 상승”?


김해공항에 새 활주로가 생길 경우 복행 상승률이 7~8%에 달해 매우 위험하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7~8% 상승각은 현재 우리나라에 취항하고 있는 항공기가 무리 없이 올라갈 수 있는 각도입니다. 바로 위에서 보여드렸던 폴라에어 화물기 사고조사보고서로 되돌아가보겠습니다. 항공기 데이터를 보면 화물을 가득 실은 747-8 항공기도 10% 상승이 가능한 것으로 나왔습니다.

나리타 공항에서 준사고를 일으킨 폴라에어 항공기. 예정했던 97% 엔진 출력을 썼을 경우 활주로 1600m 지점에서 10% 상승률로 상승이 가능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자료: 일본교통안전위원회(JTSB)

인천공항에서도 북쪽방향으로 비행기가 출발할 때 최소 상승률 6.5%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최소 상승률일 뿐이고, 대부분의 비행기는 이보다 훨씬 가파른 각도로 상승합니다. 사실 8% 상승은 우리가 ’경비행기‘라고 부르는 작은 프로펠러기도 가능한 수준입니다. 주로 훈련기로 쓰이는 세스나기(172)의 기술문서를 보면 기온 40도인 해발고도 공항에서 시속 74해리 속도(137km/h, 1분 당 2284m)로 1분마다 최대 645ft(193.5m)씩 상승이 가능하다고 나와 있습니다. 계산하면 상승각 약 8.4%가 나옵니다. 기온이 20도로 내려가면 최대 상승각은 9.3%로 높아집니다.

경비행기 세스나 172S의 기술자료. 해발고도(S.L) 공항에서 40도 기온일 때 8.4% 상승률로 상승이 가능한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자료: 세스나

물론 착륙 도중 엔진 고장 등으로 이런 상승각도를 만족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해외 공항에서는 이 같은 비상사태에 대비한 접근 절차를 따로 만들어두고 있습니다.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은 일부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착륙을 포기하고 재상승할 때 상승률 5%를 만족하지 못 할 경우 비행기 고도가 396m(1320ft)보다 낮아지기 전에 재상승하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67m(222ft)까지 계속 내려올 수 있습니다.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의 접근 항공차트. 상승률에 따라 복행고도(DA)를 다르게 적용할 것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자료: 젭슨




●’재래식‘은 늘 안 좋을까

용어에 대해서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재래식 비행 절차‘는 땅에서 비행기에 전파를 쏘아 항공기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지상장비의 도움을 받는 비행 절차입니다. 땅에 촘촘히 장비를 설치해야 하고 비행기의 빠른 속도와 높은 고도 때문에 오차도 좀 있는 항법은 맞습니다. 이에 비해 ’성능기반항행‘은 지상장비 외에도 항공기의 자체 위치계산장비나 인공위성 등의 도움을 받는 최신식 항법임은 분명합니다.

재래식 비행과 성능기반항행의 비행경로 비교. 이륙과 상승, 순항 과정에서 성능기반항행 기법을 적용하면 더 정교한 비행이 가능합니다. 자료: 에어버스

하지만 비행기가 공항에 접근할 때, 즉 착륙을 시도하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재래식 항법‘이 훨씬 정교하고 안전한 항법입니다. 그래서 관계법령에서는 이 ’재래식 접근착륙‘ 절차를 ’정밀접근‘, 성능기반항행 접근절차를 포함한 다른 절차를 ’비정밀 접근‘이라고 부릅니다. ’성능기반항행‘ 절차를 이용한 착륙은 현재 존재하는 가장 정밀한 수준의 절차(RNP AR)도 약 185~550m(0.1~0.3해리)까지 위치 오차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같은 오차를 감안해 성능기반 접근을 실시할 경우 대부분의 공항에서 재래식 접근착륙에 비해 복행고도를 2배 이상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김해공항의 재래식 접근과 성능기반항행 접근 복행고도 비교. 자료: 젭슨




●동시이착륙 불가능

해당지역 언론에서는 김해공항에 새로 건설되는 활주로가 기존 활주로와 평행하지 않기 때문에 동시이착륙이 불가능한 구조라 ’반쪽짜리 공항‘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동시이착륙은 활주로가 평행하다고 해도 매우 까다로운 조건이 충족돼야 가능합니다.

ICAO가 발간한 ’공항 설계 및 운영‘ 문서(Annex 14, Volume I)를 보면 활주로 두 개에서 비행기가 동시에 이륙하려면 활주로 사이 거리가 최소 760m, 동시 착륙하려면 최소 1035m 떨어져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비행기가 시차를 두고 번갈아 착륙하는 ’종속착륙(dependant parallel approach)‘은 915m, 한쪽 항공기가 ’거의‘ 착륙에 성공했다고 판단될 때 다른 쪽 항공기가 이륙할 수 있는 ’분리착륙(segregated parallel approach)‘은 760m 간격이 필요합니다.

비행기가 동시에 착륙하기 위해 필요한 활주로 간 거리를 정의한 공항설계분서. 자료: 국재민간항공기구(ICAO)

이런 규정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동시이착륙이 가능한 공항은 현재 인천공항 뿐입니다. 그것도 거리가 2km 가량 떨어진 공항 서쪽 활주로(16-34)와 동쪽 활주로(15-33) 중 한 곳만이 동시에 이착륙이 가능한 구조입니다. 33L과 33R 활주로에서는 동시에 항공기가 이륙하거나 착륙할 수 없습니다.

인천공항의 활주로 간 거리. 서편활주로와 동편활주로 사이 거리가 2km가 넘습니다. 자료: 구글어스

인천 외에도 광주, 김포, 김해, 대구, 사천, 청주 공항이 평행 활주로를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이착륙을 실시하는 곳은 없습니다. 위의 ICAO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한 쪽을 이륙 전용으로, 다른 쪽을 착륙 전용으로 씁니다.

시간대별로 이륙 전용, 착륙 전용 활주로를 운용하는 김포공항의 항공차트. 자료: 젭슨

부울경 지역에서 새 공항 후보지로 원하고 있는 가덕도에 평행 활주로가 들어서더라도 이 같은 기준을 충족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위 규정을 만족하려면 당초 예상보다 훨씬 넓은 바다를 매립하거나 산을 깎아내야 할 겁니다. 여기에 기존 부울경 주장대로 대형(F급)항공기가 착륙하려면 활주로 양 옆으로 훨씬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합니다. 공사비도 그만큼 늘어날 여지가 큽니다.

보잉 747-8, 에어버스 380 기종을 운용하기 위해 필요한 공항 공간. 자료: 보잉




●예외는 있지만…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입니다. 평행한 활주로 두 개가 십자 모양으로 뻗어있는 이 공항은 특정 방향의 활주로 2개(28L, 28R)가 쓰일 때만 동시이착륙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공항의 활주로 사이 거리는 228m입니다.

활주로 사이 거리가 228m에 불과하지만 동시이착륙을 적용하고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자료: 구글어스

다만 이 공항에서 동시이착륙이 가능하려면 아래 까다로운 기준을 ’모두‘ 만족해야 합니다.

1. 조종사 및 관제사 동시이착륙(SOIA) 자격 필수

2. 착륙 비행기 1대씩 별도 관제사 2명 필요

3. 옆바람(측풍요소) 10노트(초속 5m) 이하

4. 항공기의 크기(등급)이 같거나 비슷해야

5. 구름 높이는 최소 730m(2400ft) 이상

6. 가시거리는 7400m(4해리) 이상이 같은 조건을 만족하더라도 비행기 두 대 중 한 대는 간격 분리를 위해 활주로와 평행하게 접근하지 못 하고 3도 비틀어 비스듬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또 두 항공기 거리가 일정 수준 이상 가까워질 경우 두 항공기 모두 착륙을 포기하고 각각 다른 방향으로 복행해야 하는 등 매우 까다로운 규정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동시이착륙 절차를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명시한 문서. 위 조건들을 모두 만족해야 동시이착륙이 가능합니다. 자료: 미연방항공국(FAA)

공항 이착륙 난도에 대한 평가는 조종사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조종사들은 현재의 김해공항이 “까다롭기는 해도 위험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신공항 필요성은 누구나 주장할 수 있지만 현재 멀쩡히 운영되고 있는 공항을 ’위험한 공항‘으로 낙인찍어 연간 1600만 이용객(출도착 합산, 2019년)을 불안에 떨게 해서는 안되는 것 아닐까요.


●그래도 ’신공항‘?

다만 김해공항이 “위험하지 않다”고 해서 “문제가 없느냐” 하면 그런 건 아닙니다. (여기서는 우선 경제성에 대한 논란은 제외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에 있는, 한국에서 네 번째로 바쁜 공항 치고는 김해공항은 규모가 너무 작습니다. 정부가 2017년 내놓은 ’김해신공항 건설사업 2017년도 예비타당성조사‘ 문서를 보면 정부는 김해공항이 현재 시설을 유지할 경우 2020년 이용객 수가 1637만 명일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이 예측은 보고서 발간 직후 곧바로 깨졌습니다. 2017년 김해공항 이용객은 1640만 명을 기록했고 한 해 뒤인 2018년에는 1706만 명까지 늘었습니다.

김해공항의 최근 5년 간 이용객 통계. 정부는 2020년에야 1637만 명이 이용할 거라고 예측했지만 이 숫자는 2017년 이미 넘어섰습니다.

이용객은 많은데 이 공항은 군사공항입니다. 현재 김해공항은 활주로 총 수용 용량 중 약 30~40% 정도를 군용기가 점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민항기만 이용할 수 있는 전용 공항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새 공항 필요성을 주장하는 조종사나 항공업계 관계자들도 안전에 대한 문제보다는 이런 점을 이유로 드는 의견이 많습니다.

한국공항공사 소속 공항의 이용객 비교. 이용객 수 ’빅3‘인 김포 김해 제주 중 군공항은 김해뿐입니다. 자료: 한국공항공사





●소음과 환경도 문제

새 활주로가 건설되면 항로상에 놓이게 되는 지역 주민들의 소음 피해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김해공항의 새 활주로 연장선에는 김해시의 중심이 지나갑니다. 활주로와 김해시 사이의 직선거리 약 10km를 감안하면 이 활주로로 착륙하는 비행기는 약 300m 고도로 날게 됩니다. 지상에서 항공기 소음은 100~110dB 정도입니다. 비행 고도를 감안하면 이 지역 주민들은 70dB 정도의 소음에 상시 시달리게 됩니다. 기존대로 유지되거나 다른 곳에 공항이 생기면 겪지 않아도 될 소음입니다.

새 활주로가 운용되면 김해공항 주민들은 70데시벨 정도의 소음에 항시 시달리게 될 수 있습니다. 자료: 국가소음정보시스템

새 활주로가 건설될 경우 나빠질 환경에 대해서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계획대로라면 새 활주로는 낙동강 하류에 있는 지류인 평강천을 흐름을 끊는 위치에 지어지게 됩니다. 주변 습지나 철새도래지에 매우 안 좋은 영향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덕도에 새 공항이 들어서도 환경 파괴는 마찬가지라고 볼 수도 있지만 가덕도는 어차피 부산신항 개발 계획이 이미 진행 중인 곳입니다. 개발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은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지만 환경보전의 ’총량‘을 고려한다면 김해보다는 가덕도가 더 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부산신항 개발 계획. 가덕도 북쪽 해안가는 이미 대규모 개발이 진행중입니다. 자료: 해양수산부




●결국은 정치적 결정

무엇보다 김해공항이 아닌 다른 곳에 새 공항을 지어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실리는 이유는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입니다. 정부는 지난해 1월 그간 예비타당성조사에서 경제성이 없다고 평가받았던 군산지역 공항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결정했습니다. 이른바 ’새만금 신공항‘입니다.

정부가 지난해 1월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발표한 사업들. 공항 관련 사업은 새만금 공항 단 1곳 뿐입니다. 동아일보 보도

그러면서 정부와 지자체는 “새만금 신공항이 건설되면 2025년 67만 명, 2055년 133만 명의 이용객이 발생할 것”이라고 홍보했습니다. 하지만 수요예측 당시 이용객 800~900만 명을 예상했던 무안공항은 2019년 이용객이 89만5000명에 그쳤습니다. 2019년 내내 단 5만4000여 명만 이용한 양양공항도 수요예측 당시 예상한 연간 이용객은 200만 명입니다.

무안공항과 양양공항의 지난해 이용객은 각각 수요예측 당시의 10%, 2.5%에 불과했습니다. 자료: 한국공항공사

새만금 개발이 본격화되면 사업, 관광 등의 수요로 공항 이용객이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먼저 새만금 개발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수립돼 있어야 합니다. 정부는 올해 5월 새만금 개발계획을 전면 재정비할 예정이며, 이를 위해 연구용역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서울 면적의 3분의 2에 달하는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지 정해놓지도 않고 ’개발하니까 사람들이 공항을 이용할 것‘이라고 예상한다는 겁니다.

새만금개발청이 올해 5월 발표한 보도자료. 용지구분, 재원조달 등 기초적인 계획부터 새로 수립하기 위한 연구용역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자료: 새만금개발청

공항 개발 계획이 일관성 없이 진행되면서 지금은 수원을 중심으로 한 경기남부 일부 지자체에서도 “인구 1000만인 경기남부를 대표할 공항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화성으로 예정된 현 수원 군사공항이 이전할 때 민간공항도 함께 짓자는 겁니다. 이들 지자체는 “인구가 760만 명에 달하고 기업이 많아 수요가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구 정부가 특정지역에만 혜택을 부여한 채 다른 지역의 요구는 들어주지 않는다면 또 다른 극심한 지역갈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군공항 이전과 함께 경기남부에 민간공항을 지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인터넷 홍보물. 수원시광역행정시민협의회 블로그 캡처



●빨리 결론 내야

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는 당초 6월 경 검증 결과를 발표하고 김해신공항 계획을 속행할지, 아니면 새로운 곳에 공항을 지을지를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던 바 있습니다. 하지만 4분기에 접어든 지금까지 어떤 발표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부울경 지역의 여론은 점점 안 좋아지고 있고, 김해신공항 정책을 추진하던 국토교통부도 일을 하지 못 한 채 손을 놓고 있습니다. 사회적, 경제적 비용만 커질 뿐입니다. 어떤 결론이 나든 정부가 공정하게 판단한 후 빠르게 결정하고 이를 국민에게 알리는 과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