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신공항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올해 상반기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당시 코로나극복국민대책위원장(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이 부산을 찾은 자리에서 잇따라 가덕도 신공항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한 이후입니다. 현재는 부산 지역 언론을 중심으로 “김해 신공항은 부적절하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김해공항 국제선 청사 전경. 동아일보DB
●‘김해신공항’ 왜 나왔나
김해공항 북→남 방향 착륙 과정. 북쪽 지형 때문에 직선으로 접근하지 못합니다. 참조자료: 젭슨
김해공항에 놓일 새 활주로 예상도. 자료: 국토교통부, 부산시
●“비행기가 산에 충돌”
그런데 김해공항 존치를 반대하는 부산, 울산, 경남을 중심으로 김해공항의 새 활주로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이들 지자체장들은 자체적으로 ‘부산·울산·경남 동남권 관문공항 검증단(부울경 검증단)’을 출범하고 ‘김해신공항’이 위험하다는 논리를 적극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역언론 보도도 대부분 이 부울경검증단의 주장을 인용한 보도입니다.
부울경검증단과 국토부가 주장하는 신설활주로 복행 절차. 부울경검증단은 공항 남동쪽 구덕산에 항공기가 충돌할 우려가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자료: 부산시
●같은 상황 다른 기준
다만 여기서 유의해 살펴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부울경 검증단이 착륙 단계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부울경검증단에서는 14활주로 방향으로 착륙하는 비행기가 복행할 경우 승학산에 충돌할 위험이 높다고 주장했습니다. 부울경검증단은 “최신 항법인 ‘성능기반항행’ 절차로 복행할 경우 회전반경이 넓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부울경검증단은 비행기가 활주로로 접근하는 과정에서는 ‘재래식’ 접근착륙 절차를, 비행기가 착륙을 포기하고 다시 상승하는 과정에서는 ‘성능기반항행’ 접근절차를 각각 적용했습니다.
부울경검증단은 접근시에는 ‘재래식 항법(ILS)을, 복행시에는 ’성능기반항행(PBN)‘ 방식을 각각 적용했습니다. 자료: 부산시
김해공항 남→북 활주로(36L)의 복행 고도. ’성능기반항행‘ 방식의 복행 고도가 재래식 접근 고도보다 더 높습니다. 자료: 국토교통부
부울경검증단에서는 또 새 활주로가 생기면 현재 있는 36활주로로 착륙하는 비행기 역시 복행할 때 북서쪽 금정산과 충돌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현재 36활주로로 착륙하는 비행기가 복행할 때는 산을 피해 왼쪽으로 방향을 틀도록 절차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항 왼쪽으로 새 활주로가 생기면 출발하는 비행기와 간섭이 생기기 때문에 국토교통부는 선회 방향을 오른쪽으로 바꾸는 복행 절차를 새로 만들고 있습니다.
김해공항 기존 활주로의 현재 복행절차(파랑)와 새로 만들어질 복행절차(주황). 신설 활주로의 진로를 가로막지 않기 위해 기존 방향과 반대로 날아갑니다. 자료: 국토교통부
현재 김해공항에서 운용하고 있는 북동방향(LEEMA 2) 출항절차. 참조자료: 젭슨
●“너무 짧은 활주로”?
부울경검증단의 또 다른 김해신공항 반대 논리는 “활주로가 너무 짧아 대형기 이착륙이 어렵다”는 겁니다. 현재 김해공항의 긴 활주로(36L) 길이는 3200m인데 이 활주로 길이로는 대형기가 이착륙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또 남북에 위치한 산 높이 때문에 비행기가 7~8도의 상승각으로 상승해야 하는데, 이는 지나치게 위험하다고 부울경검증단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김해공항 활주로. 3200m와 2746m 활주로 2개를 씁니다. 자료: 국토교통부
보잉社 최대(最大) 민항기인 747-8 항공기의 기술자료. 40도 온도에서 설계상 최대이륙중량의 90%를 채우고 3000m 활주로에서 이륙이 가능합니다. 자료: 보잉
2017년 7월 일본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준사고를 일으킨 폴라에어 소속 747-8F 화물기(N852GT). 자료: 위키미디어
폴라에어 항공기는 97%를 써야 하는 엔진 출력을 8%포인트 덜 쓰고도 2500m 활주로에서 이륙했습니다. 자료: 일본교통안전위원회(JTSB)
747 기종 운용이 가능하게 됐다는 내용을 담은 무안공항 보도자료. 무안공항의 활주로 길이는 2800m입니다
●“가파르고 위험한 상승”?
김해공항에 새 활주로가 생길 경우 복행 상승률이 7~8%에 달해 매우 위험하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7~8% 상승각은 현재 우리나라에 취항하고 있는 항공기가 무리 없이 올라갈 수 있는 각도입니다. 바로 위에서 보여드렸던 폴라에어 화물기 사고조사보고서로 되돌아가보겠습니다. 항공기 데이터를 보면 화물을 가득 실은 747-8 항공기도 10% 상승이 가능한 것으로 나왔습니다.
나리타 공항에서 준사고를 일으킨 폴라에어 항공기. 예정했던 97% 엔진 출력을 썼을 경우 활주로 1600m 지점에서 10% 상승률로 상승이 가능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자료: 일본교통안전위원회(JTSB)
경비행기 세스나 172S의 기술자료. 해발고도(S.L) 공항에서 40도 기온일 때 8.4% 상승률로 상승이 가능한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자료: 세스나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의 접근 항공차트. 상승률에 따라 복행고도(DA)를 다르게 적용할 것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자료: 젭슨
●’재래식‘은 늘 안 좋을까
용어에 대해서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재래식 비행 절차‘는 땅에서 비행기에 전파를 쏘아 항공기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지상장비의 도움을 받는 비행 절차입니다. 땅에 촘촘히 장비를 설치해야 하고 비행기의 빠른 속도와 높은 고도 때문에 오차도 좀 있는 항법은 맞습니다. 이에 비해 ’성능기반항행‘은 지상장비 외에도 항공기의 자체 위치계산장비나 인공위성 등의 도움을 받는 최신식 항법임은 분명합니다.
재래식 비행과 성능기반항행의 비행경로 비교. 이륙과 상승, 순항 과정에서 성능기반항행 기법을 적용하면 더 정교한 비행이 가능합니다. 자료: 에어버스
김해공항의 재래식 접근과 성능기반항행 접근 복행고도 비교. 자료: 젭슨
●동시이착륙 불가능
해당지역 언론에서는 김해공항에 새로 건설되는 활주로가 기존 활주로와 평행하지 않기 때문에 동시이착륙이 불가능한 구조라 ’반쪽짜리 공항‘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동시이착륙은 활주로가 평행하다고 해도 매우 까다로운 조건이 충족돼야 가능합니다.
ICAO가 발간한 ’공항 설계 및 운영‘ 문서(Annex 14, Volume I)를 보면 활주로 두 개에서 비행기가 동시에 이륙하려면 활주로 사이 거리가 최소 760m, 동시 착륙하려면 최소 1035m 떨어져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비행기가 시차를 두고 번갈아 착륙하는 ’종속착륙(dependant parallel approach)‘은 915m, 한쪽 항공기가 ’거의‘ 착륙에 성공했다고 판단될 때 다른 쪽 항공기가 이륙할 수 있는 ’분리착륙(segregated parallel approach)‘은 760m 간격이 필요합니다.
비행기가 동시에 착륙하기 위해 필요한 활주로 간 거리를 정의한 공항설계분서. 자료: 국재민간항공기구(ICAO)
인천공항의 활주로 간 거리. 서편활주로와 동편활주로 사이 거리가 2km가 넘습니다. 자료: 구글어스
시간대별로 이륙 전용, 착륙 전용 활주로를 운용하는 김포공항의 항공차트. 자료: 젭슨
보잉 747-8, 에어버스 380 기종을 운용하기 위해 필요한 공항 공간. 자료: 보잉
●예외는 있지만…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입니다. 평행한 활주로 두 개가 십자 모양으로 뻗어있는 이 공항은 특정 방향의 활주로 2개(28L, 28R)가 쓰일 때만 동시이착륙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공항의 활주로 사이 거리는 228m입니다.
활주로 사이 거리가 228m에 불과하지만 동시이착륙을 적용하고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자료: 구글어스
1. 조종사 및 관제사 동시이착륙(SOIA) 자격 필수
2. 착륙 비행기 1대씩 별도 관제사 2명 필요
3. 옆바람(측풍요소) 10노트(초속 5m) 이하
4. 항공기의 크기(등급)이 같거나 비슷해야
5. 구름 높이는 최소 730m(2400ft) 이상
6. 가시거리는 7400m(4해리) 이상이 같은 조건을 만족하더라도 비행기 두 대 중 한 대는 간격 분리를 위해 활주로와 평행하게 접근하지 못 하고 3도 비틀어 비스듬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또 두 항공기 거리가 일정 수준 이상 가까워질 경우 두 항공기 모두 착륙을 포기하고 각각 다른 방향으로 복행해야 하는 등 매우 까다로운 규정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동시이착륙 절차를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명시한 문서. 위 조건들을 모두 만족해야 동시이착륙이 가능합니다. 자료: 미연방항공국(FAA)
●그래도 ’신공항‘?
다만 김해공항이 “위험하지 않다”고 해서 “문제가 없느냐” 하면 그런 건 아닙니다. (여기서는 우선 경제성에 대한 논란은 제외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에 있는, 한국에서 네 번째로 바쁜 공항 치고는 김해공항은 규모가 너무 작습니다. 정부가 2017년 내놓은 ’김해신공항 건설사업 2017년도 예비타당성조사‘ 문서를 보면 정부는 김해공항이 현재 시설을 유지할 경우 2020년 이용객 수가 1637만 명일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이 예측은 보고서 발간 직후 곧바로 깨졌습니다. 2017년 김해공항 이용객은 1640만 명을 기록했고 한 해 뒤인 2018년에는 1706만 명까지 늘었습니다.
김해공항의 최근 5년 간 이용객 통계. 정부는 2020년에야 1637만 명이 이용할 거라고 예측했지만 이 숫자는 2017년 이미 넘어섰습니다.
한국공항공사 소속 공항의 이용객 비교. 이용객 수 ’빅3‘인 김포 김해 제주 중 군공항은 김해뿐입니다. 자료: 한국공항공사
●소음과 환경도 문제
새 활주로가 건설되면 항로상에 놓이게 되는 지역 주민들의 소음 피해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김해공항의 새 활주로 연장선에는 김해시의 중심이 지나갑니다. 활주로와 김해시 사이의 직선거리 약 10km를 감안하면 이 활주로로 착륙하는 비행기는 약 300m 고도로 날게 됩니다. 지상에서 항공기 소음은 100~110dB 정도입니다. 비행 고도를 감안하면 이 지역 주민들은 70dB 정도의 소음에 상시 시달리게 됩니다. 기존대로 유지되거나 다른 곳에 공항이 생기면 겪지 않아도 될 소음입니다.
새 활주로가 운용되면 김해공항 주민들은 70데시벨 정도의 소음에 항시 시달리게 될 수 있습니다. 자료: 국가소음정보시스템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부산신항 개발 계획. 가덕도 북쪽 해안가는 이미 대규모 개발이 진행중입니다. 자료: 해양수산부
●결국은 정치적 결정
무엇보다 김해공항이 아닌 다른 곳에 새 공항을 지어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실리는 이유는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입니다. 정부는 지난해 1월 그간 예비타당성조사에서 경제성이 없다고 평가받았던 군산지역 공항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결정했습니다. 이른바 ’새만금 신공항‘입니다.
정부가 지난해 1월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발표한 사업들. 공항 관련 사업은 새만금 공항 단 1곳 뿐입니다. 동아일보 보도
무안공항과 양양공항의 지난해 이용객은 각각 수요예측 당시의 10%, 2.5%에 불과했습니다. 자료: 한국공항공사
새만금개발청이 올해 5월 발표한 보도자료. 용지구분, 재원조달 등 기초적인 계획부터 새로 수립하기 위한 연구용역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자료: 새만금개발청
군공항 이전과 함께 경기남부에 민간공항을 지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인터넷 홍보물. 수원시광역행정시민협의회 블로그 캡처
●빨리 결론 내야
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는 당초 6월 경 검증 결과를 발표하고 김해신공항 계획을 속행할지, 아니면 새로운 곳에 공항을 지을지를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던 바 있습니다. 하지만 4분기에 접어든 지금까지 어떤 발표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부울경 지역의 여론은 점점 안 좋아지고 있고, 김해신공항 정책을 추진하던 국토교통부도 일을 하지 못 한 채 손을 놓고 있습니다. 사회적, 경제적 비용만 커질 뿐입니다. 어떤 결론이 나든 정부가 공정하게 판단한 후 빠르게 결정하고 이를 국민에게 알리는 과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