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TV토론 일주일 전만 해도 공화당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의 흐름을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무엇보다 민주당 바이든 전 부통령의 소극적인 대응이 이번 선거를 트럼프 대 반(反) 트럼프 대결로 몰아갔고 그 결과 일반투표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이기더라도 대통령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2016년과 같이 공화당 후보가 이길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힘을 얻어갔다. 일반 여론조사와 달리 대통령의 당락을 결정짓는 소위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맹추격하는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말싸움에는 일가견이 있다는 트럼프 후보가 TV토론에서 바이든 후보를 압도할 경우 대선 판도는 요동칠 것으로 예측됐다.
다만 금번 TV토론의 내용을 고려할 때, 대선 전 북미정상회담과 같은 ‘옥토버 서프라이즈’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고 볼 수 있다. 북한 문제는 토론의 핵심 주제가 되기는커녕 언급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미국 대선의 핵심은 코로나19 대응과 미국 내 경제 상황, 인종갈등이다. 대외정책과 관련해서는 중국 문제가 다루어질 뿐이다. 그 결과 북미대화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국민들의 지지를 결집하는 깜짝 이벤트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아직 한 달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지만, 대선 국면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활용하기 위한 카드로서의 가치가 적기에 대선 전 극적인 북미대화 가능성은 줄어들었다.
문제는 대선 직후에도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할 가능성 또한 적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해 4년이라는 시간을 보장받은 상황이 되면 북한 문제를 보다 여유를 가지고 풀어가려 할 것이다. 자신을 위대한 협상가로 생각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보다 더 유리한 조건을 북한에게 제시하며 김정은 위원장의 양보를 기다릴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탄생할 경우 자신이 누차 강조한 실무진 간의 의미 있는 비핵화 협상을 먼저 갖으려 할 것이다. 그 결과 정상 수준의 대화가 이뤄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친분을 강조해 온 김정은은 조만간 친서나 공개 메시지를 통해 쾌유를 빈다는 등의 정치적 액션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년 1월 미국 대통령 취임을 전후해 공세적 행동으로 대응할 것으로 우려된다. 북한은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전략도발을 자제함으로써 미 대선과정에서 북핵문제의 우선순위를 스스로 낮췄다. 이런 북한의 입장은 대선 직후의 보상심리로 나타날 수 있고, 대화가 자신들의 뜻대로 전개되지 않을 경우 다시 한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 등을 통해 긴장을 조성시키며 미국 행정부의 적극적인 관여를 압박하려 들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는 다시 연말이나 내년 초 북한의 전략도발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최근 상황은 극적인 북미대화를 기대하기보다는 장기간의 대화 공백과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유의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