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냉천동 한 아파트 분리수거 현장. 분리수거가 제때 이뤄지지 못한 폐플라스틱들이 쌓여있다. [고동완 인턴 기자]
9월 2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 A아파트 분리수거 현장. 해당 글귀가 쓰인 종이 뒤로 플라스틱 스티로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대부분이 식품 포장용 박스다. 홈쇼핑에서 산 것으로 보이는 도가니탕 포장용기, 자반고등어 택배 케이스 등 종류도 다양하다. 20ℓ 비닐봉투엔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이 재활용품들은 월요일에 수거됐어야 했다. 하지만 수거는 수요일로 미뤄지고 말았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비대면 거래가 늘면서 플라스틱 사용량이 늘어난 데다 추석까지 앞둔 상황에서 선물용 박스 등 재활용쓰레기 배출량이 늘어나면서 당초 약속 날짜를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이다. 특히 플라스틱 배출량이 심상치 않다.
“코로나19 시작하면서 택배 물량이 늘면서 쓰레기가 많아지더니, 추석 2주 전부터 또 확 늘었어요. 사람들이 외식 대신 배달 주문을 많이 하고, 추석에도 고향에 가는 대신 선물을 보내자는 분위기라 포장용기며 페트병 등이 마구 쏟아져. 추석 지나면 더 할 거고.”
아파트 경비원 B씨의 말이다. 이 아파트 단지에는 총 561 세대가 살고 있다. 한때 660세대 아파트 단지에서 트럭의 반 정도를 채우던 수거 차량이 최근에는 이 아파트에서만 가득 찬 상태로 떠난다. 쓰레기양이 얼마나 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년 전 ‘쓰레기 대란’ 재현될까 노심초사
근처 C아파트도 상황은 비슷했다. 경비원 D씨는 “한 달 전부터 플라스틱, 종이 박스 할 것 없이 배출량이 20% 늘어났다”며 “정리하느라 화장실 갈 틈도 없다”고 토로했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지만 수거가 제때 이뤄지지 못하면서 2년 전 ‘쓰레기 대란’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2018년 중국의 폐기물 수입 중단으로 국내 폐기물 가격이 하락하자 수거 업체들은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폐플라스틱 수거를 거부한 바 있다. 현재도 당시와 비슷한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미 6월 충북 청주 지역의 일부 수거 업체는 폐플라스틱 수거가 채산성이 맞지 않다며 수거를 거부했다. 청주시의 중재로 거부는 철회됐지만 수거 업체들은 “지금 상태로 가다간 이 일 자체를 접을 판”이라고 토로했다.
경기 수원시 자원순환센터 야적장에 저장 공간 포화로 폐플라스틱이 쌓여 있다. [동아DB]
경기도 고양 E 재활용 수거 업체의 경우 폐플라스틱 수거로 이번 달만 3000만원 가까이 적자를 봤다. 공동주택 등 가정에서 수거한 플라스틱은 집하장이라 불리는 선별장에 보내지는데, 최근 들어 폐플라스틱 양이 넘쳐나면서 수거 업체는 선별장으로부터 폐플라스틱 값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돈을 내고 오는 실정이다. 선별장에서 요구하는 금액은 보통 1kg당 20~30원이다. E 수거업체 대표는 “플라스틱을 수거할수록 적자만 커진다”며 “예전엔 플라스틱 1kg 당 100원을 받았다. 지금은 거꾸로 돈을 내야한다. 플라스틱 처리 물량이 많아 선별장 입구에서 2~3시간 기다리는 것까지 생각하면 인건비까지 늘어나는 셈”이라고 밝혔다.
플라스틱 수거할수록 적자
배출된 폐플라스틱은 자치구 대행업체나 공동주택과 계약을 맺은 업체가 수거를 하고, 선별장에 보낸다. 선별장은 완성품으로 가공할 수 있는 폐플라스틱을 고르고, 선별된 폐플라스틱은 처리업체로 보내져 세척과 분쇄 과정을 거친다. 처리업체는 폐플라스틱을 재생원료로 처리해 수출하거나 액자, 발판, 하수도관 등으로 만들어 수익을 얻는다.
경기도 포천 F 수거 업체 사정은 더 심각하다. 이 업체는 월 1억 원씩 적자를 내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던 3월 이후 폐플라스틱 배출량이 30% 가까이 급증하더니 적자 규모가 더 커졌다. 이 업체가 선별장에 내는 돈은 플라스틱 1kg당 40~50원. 공동주택과 계약을 파기하고 수거를 안 하자니 위약금을 물어야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선별장 역시 폐플라스틱을 받으면 받을수록 적자다. 국제유가의 하락으로 플라스틱 가격이 낮아져 폐플라스틱의 매력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인천 서구 H 재활용 선별장 관계자는 “폐플라스틱이 넘쳐나지만 팔리지 않으니, 별다른 해결책이 없다”고 푸념했다.
국제유가 중 브렌트유는 2018년 5월 76.44달러에서 올해 3월 34.45달러로 폭락했다. 같은 기간 미국 서부 텍사스 원유도 67.88달러에서 31.34달러로 내려갔다. 폐플라스틱 수요가 줄어들자 재생된 원료 단가는 하락 곡선을 탔다. ‘PET’는 올해 2월 800원(kg)하던 게 8월엔 590원으로 떨어졌다. ‘PET’는 생수병과 커피 용기 등으로 투명 용기와 섬유로 재활용된다. 같은 기간 ‘PP’는 711원에서 684원으로 하락했다. ‘PP’는 음식 용기로 배출돼 자동차 내장재로 쓰인다. 샴푸용기가 주배출원인 ‘PE’는 지난해 평균 974원에서 809원으로 떨어졌다. ‘PE’는 필름류와 우유함, 하수관 등으로 활용된다.
폐플라스틱 전국 발생량은 2013년 4365t에서 2018년 6375t으로 상승 추세에 있다. 수거할수록 적자 폭이 늘어나는 구조에선 수거 업체의 시름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시장 상황에 따라 공동주택에 내는 재활용품 가격을 변동할 수 있는 ‘가격연동제’를 실시하고는 있지만 수거업체의 적자를 메우기에는 부족하다.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 관계자는 “아파트 단지와 수거 업체 간 계약 금액을 낮춰주거나 수거 업체에 지원금을 주는 방안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9월 23일 '자원순환 정책 대전환 추진계획'을 발표해, 재활용품 수거가 안정적으로 이뤄지도록 2024년까지 아파트 단지가 아닌 지자체가 수거 업체와 직접 계약을 맺는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하지만 수거업체 처지에서는 선별장에 내는 돈 또한 만만치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 가정의 배출 단계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경기도 소재 한 수거업체 대표는 “음식물이 범벅인 플라스틱은 오히려 세척하는 데 비용이 더 든다”며 “품질 좋은 폐플라스틱만 분리 배출해야 수거양도 줄어들고 선별장에서도 대우를 잘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폐플라스틱 사용을 유발하는 소비 구조를 단기간에 바꾸기 어려운 만큼, 플라스틱 처리 관련 대안을 찾는 노력도 중요하다. 자원순환경제사회연구소 홍수열 소장은 “정부는 계획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포장재 없는 매장,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모델처럼 다양한 아이디어를 포용하고 확산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고동완 인턴기자 historydrama@naver.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59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