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본 한라산’ <8>
한라산국립공원 인근 천연 숲에서 독특한 맛과 향을 지닌 표고버섯 수확이 한창이다. 국내에서 표고버섯 인공재배는 한라산에서 처음 이뤄졌으며 지금도 대표적인 주민 소득원이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2일 한라산국립공원 외곽 지역인 서귀포시 색달동 해발 900m의 보림농장.
한라산 둘레길 인근에 있는 이 농장에서는 요즘 표고버섯 수확이 한창이다. 사람 인(人)자 형태로 세워진 높이 120cm가량의 서어나무 원목에 표고버섯이 100원짜리 동전 크기부터 어른 주먹만 한 크기까지 촘촘하게 박혀 있다. 농장 주인 양순희 씨(61)는 “추석 연휴 직전부터 수확에 들어갔는데 올해 습도가 높아 표고버섯 생산량이 많고 품질도 좋다”며 “한라산 고지대 원시림에서 재배하는 표고버섯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고 자랑했다.
세계자연유산 생물권보전지역인 한라산의 울창한 숲에서 원목 재배 방식으로 생산하는 표고버섯은 고유의 향과 맛이 일품이다. 제주 방언으로 ‘초기’라 불리는 표고버섯은 예로부터 콜레스테롤과 고혈압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기름을 사용하는 요리나 육류에 곁들이면 좋다. 2004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10대 항암식품의 하나로 선정한 말린 표고는 중국, 일본 등지에서도 인기다.
● 한라산 국립공원 지정되며 외곽서 표고버섯 재배
표고버섯 재배 방식은 원목과 톱밥 등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전남 장흥에서는 원목 재배, 충남 청양에서는 톱밥 재배가 주를 이루며 국내 표고버섯 생산의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표고버섯 인공 재배는 한라산에서 가장 먼저 이뤄졌다. 조선시대에는 자연산 표고버섯을 채취했다. 인공 재배는 1905년 일본인 3명이 만든 회사인 ‘동영사(東瀛社)’가 한라산에서 재배한 것이 국내 시초로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표고버섯 인공 재배 사업을 확장하면서 표고버섯을 일본으로 보내고, 일부는 중국으로 수출했다. 한라산에 넓게 분포한 서어나무, 졸참나무 등이 표고버섯 원목으로 쓰였다. 일본인들이 원목을 남벌하면서 산림자원이 사라지기도 했다. 광복 이후에는 제주 주민 등이 표고버섯 재배 사업을 이어받아 키워 나갔다. 표고버섯 생산량은 1938년 3500kg에서 1973년 10만680kg, 1977년 6만1589kg 등으로 증가하면서 일본과 동남아의 주요 수출 품목이었다.
광복 이후 표고버섯 재배지 76곳 대부분은 한라산 해발 500∼1000m에 위치했다. 1970년 한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며 표고버섯 재배는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국립공원 내 재배가 불가능해지면서 영실탐방로사무실 부근 1곳을 제외하고는 외곽 지역으로 밀려났다. 현재 제주에서 원목으로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농가는 제주시 20곳, 서귀포시 32곳 등 모두 52곳. 지난해 생표고버섯 5만450kg, 마른 표고버섯 11만3080kg을 생산했다.
주민들은 한라산에서 표고버섯 등 임산물로 수익을 얻었지만 한때 삼림지를 불태운 뒤 농사를 짓는 화전농이 등장하기도 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제주시 능화오름(해발 975m)에서 족은드레왓(해발 1339m)을 연결하는 해발 600∼1200m 일대에 화전부락이 형성됐다. 1948년 발발한 제주4·3사건 당시 산간마을을 없애는 ‘소개령’으로 화전부락은 사라졌다.
4·3사건이 마무리된 뒤 일부 지역에서 마을 복원사업이 있었지만 한라산 고지대에서는 추위가 심한 기후 특성과 화산회토의 토양, 생활용수 공급 부족 등으로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다. 이에 비해 지리산은 비옥한 토양에다 골짜기가 깊고 물이 풍부하기 때문에 마을 형성과 유지가 가능했다.
● 한라산은 다양한 약초, 희귀식물의 보고
농사가 힘든 한라산에서는 풍성하고 독특한 산림이 최대 자원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목장 조성과 화전농업 등으로 파괴된 산림을 복구하기 위한 조림사업이 시행되기도 했지만 구상나무, 소나무, 주목 등을 대량으로 벌목하고 털진달래, 눈향나무, 당단풍나무 등을 정원수나 분재용으로 채취하는 행위가 공공연하게 이뤄졌다. 광복 이후에는 연료와 난방용 등으로 쓰이는 숯을 만들면서 원시림 곳곳에 생채기가 났다. 당시 숯을 생산했던 ‘돌가마’를 한라산국립공원 관음사탐방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등 산간지대에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숯 굽기는 연탄과 석유 보급이 보편화되면서 자취를 감췄다.한라산에서 새로운 임산물 자원 개발을 위해 산양삼 재배를 시도하기도 했다. 민간에서 산양삼 재배가 추진되다가 1992년 제주도 공공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연구사업으로 진행했다. 2000년까지 산양삼 산지 파종과 농가 시험 보급 등을 통해 해발 500m 이하에서는 여름 고온으로 고사했지만 해발 700m 이상에는 3년 이상 출아율이 50% 이상을 유지해 재배 성공 가능성을 보였다.
산양삼의 사포닌 성분은 인삼보다 1.3배 정도 높게 검출되는 등 상품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연구 덕분에 현재 제주시 8농가, 서귀포시 6농가가 54만 m²에서 산양삼을 재배하고 있다.
한라산은 국내 대표적인 약초생산지이지만 그동안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고 관련 통계도 없는 실정이다. 약초업계에서는 “한라산 자생식물 종수의 절반에서 약재 성분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해풍과 습도 등이 제주에 자생하는 식물의 약재 성분을 높이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라산 고지대에서 자라는 약초는 약재 성분이 더욱 풍부해 선호도가 높다. 1960, 70년대에 도라지, 더덕은 물론이고 천마, 제주황기 등을 많이 채취했다. 이들 약초를 캐서 생계를 꾸리거나 상당한 재산을 모은 주민도 생겨났다.
한라돌창포, 설앵초 등 고산식물은 물론이고 구상나무, 주목, 흑오미자씨는 육지 화원이나 분재, 조경업자의 주요 구매 품목이었다. 한라산에서 채취한 상황버섯, 영지버섯 등은 고가에 팔려나갔다. 하지만 한란 등 야생 난을 비롯해 한라산 해발 1400m 이상에서 자라는 털진달래, 눈향나무 등은 수난을 당했다. 마가목 열매, 겨우살이 등을 채취하는 행위가 지금도 은밀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단속이 강화됐지만 국립공원관리사무소가 자리를 잡기 전까지 약초꾼, 도채꾼 등이 산을 누비고 다녔기 때문이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