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욜로를 대신하는 미국 청년들의 모토는 ‘파이어(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다. ‘재정 독립과 조기 은퇴’란 말이 보여주듯 젊은 시절 바짝 돈을 모아 30대, 늦어도 40대에 은퇴하는 걸 목표로 한다. 이전에 월스트리트 등의 고소득 청년들이 공유하던 사고방식이 전체 청년층으로 퍼진 것이다. 저축하는 것만으로 긴 은퇴생활 동안 경제적 자유를 누리기 어려운 만큼 핵심은 돈을 수십 배로 튀기는 재테크에 있다.
▷원격강의 탓에 한국의 대학 캠퍼스가 텅 비었지만 온라인을 중심으로 대학생들의 주식 투자 열풍이 거세다. ‘캠퍼스판 파이어족’의 등장이다. 증권사 개최 대학생 모의투자대회는 지원자가 갑절로 늘었다. 우울한 대학생활을 보내는 자녀들이 생활력, 사회성을 결여할까 봐 염려하는 부모 가운데 자녀의 주식 투자를 긍정적으로 보고 종잣돈을 쥐여주는 이들도 있다.
▷청년들의 주식 열풍은 코로나19 영향이 크다. 각국 정부, 중앙은행이 공급한 과잉유동성으로 주가가 급등하자 전 세계 파이어족들이 불나방처럼 증시로 뛰어들었다. 집값이 급등한 데다 일찌감치 부모에게서 아파트를 물려받는 부잣집 자녀들을 보면서 ‘주식 투자밖엔 길이 없다’는 청년들의 초조함도 커졌다.
▷‘인생은 한 번뿐, 지금 즐기자’는 욜로가 ‘빨리 왕창 벌고 일찍 은퇴해 길게 즐기겠다’는 파이어족으로 바뀌는 건, 성공과 부는 성실한 노동을 통해 차근차근 쌓아가는 것이란 전통적 가르침이 현실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청년세대의 좌절에 바탕을 두고 있다. 거품 낀 주가는 언제든 폭락할 수 있다. 청년들이 일 속에서 삶의 기쁨을 찾을 기회를 만들지 못한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