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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리스크’의 시대, 우리의 외교의 할 일은? [우아한 전문가 발언대]

입력 | 2020-10-05 14:00:00


올 추석 연휴 첫 날, 지구 반대편에서는 사뭇 ‘혼란스러운(chaotic)’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일을 한 달 남짓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전 부통령이 대선 후보로서 처음으로 TV 토론에서 맞붙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의 선봉에 서 왔던 초강대국 미국의 대선 후보들이 기본적인 예의조차 지키지 않으며 인신공격성 말 폭탄들을 쏟아내는 모습에 미국 국민들은 물론 전 세계의 많은 시민들이 실망했습니다. 바로 며칠 뒤에는 트럼프 부부의 코로나 확진 소식마저 전해지며 충격은 배가 되었습니다.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미 대선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일까요?

●미국 발 리스크의 시대
지난 3년 반의 트럼프 대통령 임기 동안, 국제 정세에 커다란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첫째, 오바마 행정부 시절만 하더라도 핵안보정상회의나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과 같은 방식으로 다자주의(multilateralism)를 리드하던 미국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의 기치를 내걸고 일방주의(unilateralism)로 선회하게 되었습니다. 다자주의는 20세기에 벌어진 잔혹한 파괴의 역사를 교훈 삼아 글로벌 거버넌스를 추진해 나아가려는 국제사회 구성원들의 노력의 산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다름 아닌 미 대통령이 동맹국들에게조차 기존의 외교나 협력의 전통, 공유되는 이념적 가치보다는 방위비 분담금을 앞세우며 보여 온 태도는 미국을 더 이상 리더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회의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둘째, 이러한 미국 우선주의 정책 기조 하에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다방면에서 노골화되면서 냉전 때처럼 이른바 ‘지정학의 귀환’이라는 흐름이 굳어지고 있다는 것을 주지해야겠습니다. 최근 들어 앨릭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에 이어 키스 크라크 국무부 경제차관까지, 미국의 고위급 관료들이 잇달아 대만을 방문한 것이 이를 단적으로, 그리고 극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미중 대립의 양상이 심화되면서 미 전략가들에게 있어 대만의 가치는 새삼 재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는 미국을 글로벌 리더로 여기기보다 리스크로 여기는 나라들이 늘어날 정도로 국제 정세의 판세는 많이 바뀌게 되어 버렸습니다만, 국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미국 발 리스크는 커지고 있습니다.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BLM)’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백인우월주의 극우단체인 ‘프라우드 보이스(Proud Boys)’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대기하라(Stand by)’고 발언하는 등, 미국 내의 인종갈등은 점입가경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적 가치를 수호해야 할 미 대통령이 대선 결과 불복마저 공공연하게 언급하면서 혹자들은 대선 후 소송이나 무력 충돌이 있을 가능성마저 언급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미국 발 리스크가 커진 상황에서, 이번 대선의 결과는 그 미치는 영향이 과거 어느 때보다 클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전문가들이 트럼프나 바이든 모두 중국에 대해서는 강경한 입장이라는 분석과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바이든 후보가 당선된다면 트럼프 대통령보다는 동맹국에 대해서 유화적인 자세를 취하거나, 다자주의적 노력을 회복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다 하여도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는 상황은 이어질 것이고 지정학적 요충지에서 두 세력이 충돌할 가능성도 여전할 것입니다.

국내적으로도 바이든이 승리한다고 해서 현재의 사회적 갈등이 일거에 해소되리라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최근 미 연방 대법원의 긴즈버그 대법관이 사망하면서 후임 인사를 놓고도 워싱턴 정계가 술렁이고 있는데요, 현재 트럼프 대통령이 공식 지명한 에이미 코니 배럿 후보의 인준이 성사된다면 미 대법원의 이념 구도는 보수 성향으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대법관의 임기가 명료하게 정해져 있지 않으니, 이대로라면 대선에서 누가 이기던지 상관없이 대법원이 향후 꽤 오랫동안 보수색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기로에 선 우리 외교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 대선의 결과가 우리에게 미칠 영향도 어느 때보다 커졌습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의 특종 기자로 잘 알려진 밥 우드워드의 신간 ‘격노(Rage)’가 출판되면서, 책에 실린 ‘(핵무기 80기의 사용을 포함할 수 있는) 작전계획 5027’에 대한 언급 때문에 ‘핵무기 80기’가 2017년 당시 북한의 핵능력을 가리키는 것인지 미국이 사용할 수도 있었던 탄두의 개수를 가리키는 것인지를 놓고 국내 정치권에서는 오역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논쟁에 앞서서 우리가 다시금 상기해야 하는 것은, 미국은 언제든지 그러한 방법도 선택지의 하나로서 두고 상대국과 교섭에 임하고자 하는 국가라는 현실이며, 그들의 전략적 선택이 내려지는 순간에 자국의 안보보다 한국과의 동맹이 우선시 되는 경우는 결코 없다는 부분입니다. 한반도에서 수백만의 희생을 가져올 수도 있는 엄청난 선택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은 다름 아닌 미국의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11월 대선에서 바이든이 승리한다고 하여도 이러한 미국의 본질과 시스템이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닌 이상, 그의 승리가 곧바로 한반도의 평화에 유리한 상황으로 연결된다고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제 우리 외교는 다시금 기로에 섰다고 하겠습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한 일정이 취소되고 일본 도쿄만 방문하게 된 것이나,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일본 방문 계획이 전해지고 있습니다만, 코로나 시국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외교전쟁은 치열하게 진행 중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정부도 한반도에 핵무기가 투하되는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 내서 한반도에서 핵무기의 위협을 원천적으로 소멸시켜야 한다는 목표를 다시금 확고히 다지고, 그 목표를 달성하려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짜야만 합니다. 또한 부지런히 주변국들과 만나, 설득하는 외교를 통해 우리의 목표를 착실히 달성해 나가야만 합니다.

외교라는 것은 결코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며, 인위적인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하는 ‘예술(art)’의 영역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나아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신속하고도 부지런하게, 집요하고도 치밀하게 미국은 물론 주변국과의 외교에 온 힘을 쏟기를 주문하고 싶습니다.



임은정 국립공주대학교 국제학부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