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은 한국 여성학의 선구자였다. 강단에서는 불평등한 여성의 현실을 이론화했고 여성민우회, 여성단체연합,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정의기억연대의 전신) 등 단체 활동을 통해 현실을 바꿔 나갔다. 호주제 폐지, 부모 성 같이 쓰기, 동일노동 동일임금, 비례대표제 도입 등 그가 강단과 단체를 오가며 맺은 열매는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렵다.
▷말년은 더욱 멋졌다. 1990년 정년을 맞은 그는 7년 뒤 부모의 고향인 경남 진해로 내려갔다. “어느 순간 내가 한 말을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나 자신이 중요한 자리를 맡거나 선두에 나서기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는 이유에서다. 진해에서 ‘기적의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지역사회 풀뿌리운동에 헌신했다. 2008년 그는 한 인터뷰에서 “교수 대신 지역활동을 했더라면 세상이 조금 더 변화했을 것”이라며 자신의 진로 선택에 뒤늦은 ‘후회’를 고백하기도 했다.
▷선생을 비롯한 여성운동 1세대에는 유복한 집안 출신이 많다. 딸이라는 이유로 학교도 못 가던 1950, 60년대에 미국 유학까지 간 것은 엄청난 혜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자신이 가진 지식과 능력을 불행한 여성들을 일깨우는 데 바치려 노력했던 듯하다.
▷선생의 타계 소식에 여야 막론하고 애도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요즘처럼 진영으로 갈라진 세상에서 드문 일이다. 사리사욕을 멀리하고 헌신한 진정성은 당파 관계없이 통하는가 보다. 평생 여권 신장을 위해 싸워온 이 선생은 10여 년 전 자신을 찾아온 후배들에게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랑의 능력을 키우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사랑’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질임을 이제야 깨닫게 됐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