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서 아들 잃고 진상규명 투쟁 중인 송수현 씨
송수현 씨는 “아들 목소리를 듣고 싶어 평소 통화를 녹음해 뒀는데 그걸 증거자료로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유가족이 난리치지 않으면 기소도 힘든 군 내부 실상을 문재인 대통령은 아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천=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이진구 논설위원
…여러분도 추미애가 될 수 있답니다. 군부대에 강하게 항의하고 부모가 난리치면 현재 있는 군부대에서 옮겨주기도 하고 어느 정도 내 자식을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을 아들을 떠나보낸 후에 알게 됐습니다….(9월 6일 송 씨가 인터넷에 올린 ‘엄마가 추미애가 아니라 미안해’ 일부)―지난달 초 인터넷에 올린 글이 많은 공감을 받았습니다.
―순진했다는 게 무슨 뜻인지요.
“부모가 나서지 않아도 별일 없을 줄 알았어요. 그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런데 아들이 죽고 나서야… 부모가 부대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난리치면 근무지를 옮겨주기도 하고, 관심 있게 살펴준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도….” (어떻게 알게 됐습니까.) “장례식장에 온 분들이 얘기 해줬어요. 자기도 군 복무 중인 아들이 힘들다고 하기에 ‘힘들더라도 참아야지’ 했더니 아들이 주먹으로 방바닥을 내리치며 하소연을 했대요. 그래서 그 뒤에 부대에 쫓아가 난리를 쳐서 부대를 옮겨줬다고…. 나도 그랬다면 내 아들이 안….”
―많이 힘들다고 하던가요.
“한번은 갑자기 휴가가 잘리게 됐다고 부대에 전화 한 통 해 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엄마니까 해줄 수 있지 않느냐고…. 그런데 무심하게 이제 일병이니 네가 알아서 하라고 했어요. 부모가 그런 것까지 나서는 건 아니지 않나요. 그런데 애가 ‘내가 하면 씨도 안 먹힌다’고 하더군요. 그때 얼마나 힘들어서 그런 말을 한 건지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그때는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어요.”
―추 장관 아들 의혹이 한창이던 지난여름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습니다.
송수현 씨와 아들 최현진 씨.
―정의감 있는 의원이 있었습니까.
“아니요. 그런데 어느 날(7월 27일) 오후 7시쯤인가…, 차 한 대가 나가는데 창문이 열리더니 누가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추미애입니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제가 ‘엄마가 추미애가 아니라 미안해’란 글귀를 새긴 반팔을 입고 있었거든요. 제가 인터넷에 주문해서 만들었는데… 추 장관을 개인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건 아니었어요. 단지 제가 추 장관처럼 힘 있는 사람이었으면 아들에게 그런 일은 없었을 거란 생각에 한 건데… 정작 추 장관을 보니까 순간 겁도 나면서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당시 추 장관 아들 문제로 국회가 시끄러웠는데 어머니가 입은 옷을 보고도 알은체했다는 건가요.) “별다른 말은 안 했는데…. 그날 집에 와서 저녁 뉴스를 보다가 소름이 끼쳤어요. 그날 추 장관이 국회에서 ‘소설 쓰시네’라고 했더라고요. 의원들 앞에서 그 말을 하고 나가다가 저를 보고 웃으며 인사를 한 거죠. 지금도 왜 굳이 창문을 열고 말을 건넸는지 모르겠어요.”
※추 장관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했다.
“아는 높은 사람이 없어서…. 저는 전화로 보험 상담 일을 했어요. 남편은 자영업자고…. 변호사도 처음에는 제 동생 친구의 딸이 아는 사람을 통해 구했으니까요. 그런데 정당하게 받아야 할 기록조차 ‘빽’이 없는 사람은 못 받는 건가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군 검사에게 수사 기록을 보내 달라고 했더니 부대 방침상 안 된다고 하더군요. 받을 수 있는 자료라는 걸 알고 요구한 건데…. 한 달을 싸워서 간신히 받기는 했지요. 결국 줄 거면서 왜 그렇게 힘들게 만들었는지…. 그걸로 싸우다 공황장애까지 왔어요. 약을 먹지 않으면 견디기가 어려운데 요즘은 추 장관 때문에 더 먹고 있어요. 볼수록 내 아들과 비교되고 억울해서…. 아들의 억울함을 풀기 전까지는 장례를 치를 수 없을 것 같아요.” (2년 가까이 되지 않았습니까.) “장례식은 치렀지만 아직 시신은 국군수도병원에 있어요. 화장을 못 하고 있죠. 원통함을 풀어줘야 아들이 편안하게 눈을 감을 것 같아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습니까.
“왜요, 알아봤지요. 거기가 대통령 직속 기구인데…. 그런데 우리 아들에게는 소용이 없었어요. 1948년부터 2018년 8월까지 발생한 군 의문사가 대상이라고 하더라고요. 제 아들 일은 그 후에 벌어졌으니까요.” (군에서 알려준 건가요.) “군에서는 그런 기구가 있다는 걸 알려주지도 않아요. 장례식장에 온 군사상유가족협의회 분들이 알려줘서 우연히 알게 됐지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2018년 9월부터 3년 기한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총 1610건이 접수됐는데 그동안 7만여 명이 군에서 숨진 것에 비하면 지나치게 적은 수다. 대부분의 유족이 위원회 존재를 모르기 때문인데, 유족에게 문자나 우편으로 알려주자는 건의가 올라와도 관련법이 없다는 이유로 묵살된다고 한다. 법 개정이 되지 않아 지난달 13일까지 신청한 사안에 대해서만 조사를 한다.
―사건 당시에는 지금 이름이 아니던데요.
“원래 제 이름은 송덕순이에요. 아들이 그렇게 된 후에 동생이 점을 보러 갔는데 제 이름이 안 좋다고 했대요. 쓸데없는 망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 내 이름 때문에 아들이 그렇게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봐서 그런지 군사상유가족협의회 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분들 중에 이상하게 ‘순’자를 가진 분이 많은 것도 마음에 걸렸고….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작명소에 가해자 이름과 생년월일을 가지고 갔지요.” (가해자 이름은 왜….) “아직 법정 싸움이 진행 중이었으니까요. 그곳에서 가해자를 이기는 데 ‘수현’이란 이름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신 건 아니겠지요.) “…저라고 왜 모르겠어요. 미신을 믿는다고 손가락질할 사람도 있겠지요. 이름 바꾼다고 정말 달라지겠어요. 그런데… 그거라도 붙잡고 매달리지 않으면… 아무 힘도, ‘빽’도 없는 제가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요. 저는 추미애가 아니잖아요.”
“엄마가 당 대표라 미안해.” 9월 17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추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송 씨의 글이 화제가 된 지 며칠 안 돼서다. 추 장관은 자식 잃은 엄마가 그 말을 듣고 어떤 심정이었을지 생각해 봤을까.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