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老가수가 몇 마디 말로 보여준 통찰 청와대, 눈과 귀 입 되돌아보는 계기 되길
이승헌 정치부장
이번 ‘나훈아 사건’과 별개로 개인적으로 필자는 정치 리더들의 명언을 가끔 되새기곤 한다. 직업적 습관 같은 건데, 당시 상황을 담고 있어 역사책을 보는 느낌이 든다. 김구 안창호 선생 등 우리 선각자들의 말도 좋고, 미국 대통령들의 말들도 새길 게 적지 않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시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에게 예약되어 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상원의원 시절인 1956년 한 연설 중 일부. 이 문장을 인용했다는 단테의 ‘신곡’에는 정작 ‘지옥의 가장 뜨거운’ 등의 표현이 없어서 과다 해석 논란도 있지만 메시지만큼은 불처럼 분명하다. 대통령 시절에도 종종 사용해서 그가 구현하려던 뉴 프런티어 정신의 상징적 표현 중 하나가 됐다.
정치와 언론의 본질에 대한 통찰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따라가기 어렵다. 2017년 1월 18일, 트럼프 취임을 하루 앞두고 한 그의 마지막 기자회견은 언론학 교과서에 실릴 만하다. “여러분은 나에게 거친 질문을 해야 한다. 그래야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은 우리가 책임감을 갖고 일하게 된다.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트럼프 정부에서도) 집요하게 진실을 끄집어내서 미국을 최고의 상태로 만들어 달라.”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후 많은 말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단연 취임사의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대목이다. 조국, 추미애 사태와 부동산 대란을 겪으며 조소(嘲笑)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당시엔 새 정부 출범의 에너지를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후 무릎을 치게 하는 말이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의 말은 공허하기까지 하다. 비핵화를 생략하고 종전선언을 촉구한 유엔총회 연설이나, 공무원 총살 사건에도 김정은의 사과를 ‘각별하다’며 평가한 발언 등이 대표적이다.
왜 그럴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대중과의 공감력이 떨어지는 게 가장 클 듯싶다. 이게 온전히 문 대통령 탓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청와대의 총체적인 공감력이 떨어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치는 말이 쌓여 레거시를 만드는 과정이다. 현실에 대응하는 청와대의 눈과 귀, 그리고 입이 정상이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부터 필요한 시점이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