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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의 도약대에 선 한국형전투기[윤상호 전문기자의 국방 이야기]

입력 | 2020-10-06 03:00:00


경남 사천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공장에서 한국형전투기(KFX) 시제기의 최종 조립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현대전의 주력을 담당하는 전투기는 첨단과학기술의 결정체로 꼽힌다. 최고 수준의 항법·항공전자·무장 관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총동원돼야 하기 때문이다. 실례로 현존 최강의 전투기로 평가되는 F-22 스텔스기에는 ‘슈퍼 파워’ 미국의 최첨단 기술력의 정수가 고스란히 응축돼 있다. 러시아, 중국, 유럽 선진국의 전투기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전투기 개발 경쟁은 총합적 국력의 각축장이자 미래 군사력의 판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20만∼30만 개의 초정밀 부품으로 이뤄진 전투기를 제작하는 것은 웬만한 나라는 엄두를 낼 수 없는 도전이다. 최소 10년 이상 수조 내지는 수십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예산 투자를 비롯해 국가적 역량을 쏟아부어야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미국도 갖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20년 넘게 수백억 달러를 투입한 끝에 F-22를 개발할 수 있었다. 예산과 기술적 한계로 중도에 포기하거나 완성된 전투기가 기대에 못 미쳐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세계적 수준의 전투기 개발국이 손가락에 꼽힐 정도라는 현실이 높은 장벽을 실감케 한다.

우리나라가 그 장벽을 뛰어넘기 위한 도약대에 올랐다. 지난달 한국형전투기(KFX)의 시험용전투기(시제기)가 최종 조립을 시작한 것이다. 2001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이 공사 졸업식에서 최신예 국산 전투기 개발을 공언한 지 근 20년 만의 결실이다.

내년 상반기에 시제기가 완성되면 5년간 수백 차례의 지상·비행 시험을 거쳐 2026년까지 KFX 전력화를 끝내는 것이 목표다. 이후 120여 대가 순차적으로 양산돼 영공 수호에 나서게 된다. 총사업비는 개발비(8조6000억 원)를 포함해 총 18조6000억 원에 달한다. 무기 획득 사업으로는 단군 이래 최대 규모다.

KFX의 개발 사업은 고비의 연속이었다. 사업 초기부터 “무모한 도전이다” “막대한 예산만 낭비할 것”이라는 비판이 팽배했다. 정권과 평가기관에 따라 사업 타당성에 대한 판단이 뒤바뀌면서 최종 착수 결정을 내리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렸다. ‘전투기의 눈’에 해당되는 에이사(AESA) 레이더 등 핵심 장비의 기술 이전을 미국이 거부하면서 한때 무산 위기를 겪기도 했다. 동체 설계 제작과 통합전자전장비 개발 등도 험난한 과정이었다. 국내 기술로 불가능하다는 우려를 떨쳐내고, 주요 부품장비의 국산화에 속속 성공함으로써 KFX는 본궤도에 오르게 된 것이다.

지금도 KFX에 대한 회의론이 있는 게 사실이다. 외국의 경쟁 기종보다 성능이 떨어져 전력 증강과 수출 등 경제적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양산 대수를 축소하고, 외국 전투기를 도입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KFX 개발이 국익 차원에서 ‘일거다득’이라고 필자는 본다. F-4, F-5 등 노후 기종의 퇴출이 가속화되면서 2020년대 후반이면 우리 공군은 적정대수(430여 대)보다 100여 대나 적은 전투기를 운용해야 한다. 그 공백을 외국 기종으로 메우면 초기 비용은 KFX보다 덜 들겠지만 운용유지비는 천정부지로 뛸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해외에서 도입한 전투기들의 정비 및 성능 개량 비용은 갈수록 치솟는 실정이다.

KFX가 도입되면 운용유지 예산 절감과 정비 소요기간 단축을 통해 높은 가동률을 유지할 수 있다. 개발 과정에서 축적된 선진 기술력은 한국형 스텔스기와 6세대 전투기 개발로 직결돼 미래 공군력 건설과 자주국방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수출 시장도 충분히 노려볼 만하다. KFX는 F-35와 같은 스텔스기(5세대)를 제외한 4.5세대급 전투기로는 최고 ‘스펙’을 갖게 된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전투기로 우리 공군의 주력이기도 한 F-16은 물론이고 주변국의 동급 전투기를 압도하는 수준이다. T-50 고등훈련기와 FA-50 경공격기의 수출 경험을 바탕으로 KFX의 ‘가성비’를 극대화하면 세계 전투기 시장에서 ‘K방산’의 주역으로 우뚝 설 수 있다.

KFX의 민간 분야에 대한 파급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항공산업의 총아인 전투기 개발은 모든 산업에 걸쳐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내는 촉매제이기 때문이다. 파생 기술의 저변 확대와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KFX가 안보의 중추이자 차세대 경제성장 동력으로 비상할 수 있도록 국민적 관심과 범정부적 뒷받침이 절실한 시점이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