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불안으로 육아가 힘들 때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상당히 유순하고 점잖아 보이는 부부가 진료실을 찾아왔다. 부부는 순해 보이는 네 살 난 아들의 손을 꼭 붙들고 있었다. 아이는 어렸을 적부터 낯을 너무 많이 가려서 누가 조금만 스치고 지나가도, 누가 쳐다보기만 해도 울었다고 했다. ‘좀 크면 나아지겠지’ 생각했는데, 자랄수록 아이의 행동은 심해졌다. 소리에 지나치게 민감하고 어떤 식재료도 한 번에 먹지 못할 정도로 입맛이 까다로웠다. 심지어 촉감도 예민해 변기에 앉지 못할 정도였다. 부부는 아이를 키우는 게 너무 힘이 든다고 고백했다.
겉보기엔 부부에게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이들의 불안한 정도는 의외로 높은 편이었다. 부부에게 “두 분 가운데 불안이 심한 분이 계신 것 같은데요, 어느 분이 그러세요?”라고 물었더니 엄마가 먼저 “제가 수줍음이 많고 겁이 많은 편이에요”라고 대답했다. 이어 아빠도 “저도 원래 성격은 무척 내성적이고 꼼꼼한 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불안이 높은 사람끼리 결혼할 확률은 비교적 낮다. 대부분 불안한 사람은 자신의 불안한 부분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기 때문에 전혀 불안해 보이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불안은 워낙 다양한 모습이라 언뜻 봐서는 알아볼 수 없다. 불안은 종종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존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척 소심하지만 지나치게 대범하게, 만사에 노심초사하지만 철두철미하고 완벽한 모습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예전에 불안이 높았다는 것은 뭔가 자신이 안전하지 못한 상태이고 보호가 필요했다는 반증이다. 혼자일 때는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않도록 자신의 예민함을 숨기며 살 수 있다. 그런데 절대적으로 내가 보호해야 할 아이가 나타나면 불안은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게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게 된다. 육아의 고비마다 불안이 지나쳐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앞의 부부 또한 아이를 낳기 전에는 별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자신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불안이 합쳐져 극도로 불안해하는 아이가 태어났고, 유순해 보이지만 그 아이로 인해 부부가 각자 가진 불안은 몇 배로 높아져 있었다.
불안은 전파력이 상당히 강해서 괜찮은 사람도 불안한 사람 옆에 있으면 불안해지고 만다. 불안하지 않은 배우자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배우자를 피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불안한 사람은 살아가면서, 특히 부부가 되어 자식을 낳고 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너무도 많은 문제를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불안하지 않은 배우자는 불안한 배우자가 점차 짐으로 느껴져 부부로서 함께 사는 것을 부담스러워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라면 또는 부모가 될 예정이라면 자신의 불안에 대해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자신의 어떤 행동이 불안인지, 상대편의 어떤 행동이 불안인지도 생활 속에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문제들이 생겨난다. 부부는 오해의 골이 깊어져 갈등하게 되고, 그 안에서 태어나는 아이 또한 건강하게 자라기 어렵다. 불안정한 양육 태도로 인해 불안정한 성인으로 자랄 수도 있다.
숨기거나 속이지 말고 자신의 불안을 인정하고 그대로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불안은 인정하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닌 불안의 정체를 정확히 알면 마음이 잔잔해지기를 기다렸다가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내가 좀 심하구나. 내가 내 문제로 아이나 배우자한테 이렇게 행동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한두 번 그렇게 하기 시작하면 당연히 행동에 변화가 온다. 행동이 달라지면 내 불안은 물론이고 나와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상대의 불안 역시 덩달아 낮아진다. 우리는 내 안의 불안을 보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