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가계약을 하자마자 서울 동묘 풍물시장에 도끼를 사러갔다. 시골 생활을 하면서 도끼로 장작을 패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게 로망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도끼를 발견했고, 도끼 파는 할아버지와 흥정을 시작했다. “할아버지, 이 도끼 얼마예요?” “이건 단조로 만든 거라 비싸요.” “단조요?” “쇠를 여러 번 두드려서 만든 거라고. 요즘 나온 도끼는 몇 번 쓰면 못 써. 이건 30년 넘은 도끼야.” “근데, 도끼날이 뭉툭하네요?” “도끼날이 너무 날카로우면 다쳐!” 할아버지의 스토리텔링에 넘어가 6만 원을 주고 뭉툭한 도끼를 사가지고 집에 왔다.
한옥에 도착하자마자 도끼를 꺼내서 통나무 장작 앞으로 갔다. 스트레칭을 하고 굵은 통나무를 하나 세워놓고, 있는 힘껏 내려쳤다. ‘퉁’ 소리와 함께 도끼가 튕겨 올랐고 도끼 손잡이를 잡고 있는 내 손으로 짜릿한 고통이 전해졌다. 이게 왜 이러지? 나는 다시 한 번 도끼를 잡고, 장작을 힘껏 내려쳤는데 이번에도 도끼는 장작 틈을 파고들지 못했다. 아, 도끼를 잘못 산 건가?
옛날에 한 마을에 사는 두 청년이 똑같이 도끼를 사서 장작을 팼는데, 한 청년은 쉬지 않고 장작을 팼고, 다른 청년은 쉬엄쉬엄 장작을 팼다고 한다. 그런데 한 달 후, 쉬엄쉬엄 장작을 팼던 청년의 장작이 다섯 배나 더 많은 걸 보고 다른 청년이 물었다. “나는 쉬지 않고 장작을 팼고, 자네는 쉬엄쉬엄 한 거 같은데, 왜 자네 장작이 더 많은 거지?” “나는 쉬엄쉬엄 했지만 쉬는 동안 도끼날을 갈았네.” 그래, 장작이 안 쪼개지는 건 도끼날이 뭉툭해서 일 거야. 나는 읍내에서 숫돌을 사와 열심히 도끼날을 갈았다. 그러고 다시 한 번 장작 쪼개기에 도전했는데, 역시나 도끼가 퉁! 하고 튕겨 오를 뿐, 장작은 쪼개지지 않았다. 내 실력이 부족한 거구나 자책을 하고 도끼를 창고에 넣어뒀다.
그러다 후배 가족이 놀러왔는데 후배 녀석이 도끼를 보더니 “형님, 이거 장작 쪼개 봐도 돼요?” 해서 도끼를 건네줬는데, 장작이 쩍! 하고 갈라지는 게 아닌가. 눈과 귀를 의심하는 사이 그 녀석이 다시 한 번 도끼를 힘껏 내려쳤는데, 역시나 장작이 쩍 하고 갈라졌다. 뭐지? “줘봐. 나도 한번 해볼게!” 도끼를 받아들고 힘껏 내려쳤더니 이번에도 장작은 쩍 하고 갈라졌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후배에게 설명했더니 후배가 한마디 했다. “형님, 나무가 안 말라서 그랬던 것 같은데요. 나무가 잘 말라야 잘 쪼개져요.” 비밀은 나무였구나. 도끼도 좋아야 하고, 도끼날도 날카로워야 하고, 도끼질도 잘해야 하지만, 나무도 잘 말라야 하는구나. 세상에 쉬운 일 없고, 그냥 되는 일도 없구나.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