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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피살’ 공무원 유족, UN에 진상조사 요청…‘제2의 웜비어 사건’ 될까

입력 | 2020-10-06 18:37:00


북한 군인에 의해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 씨(47)의 유가족이 북한 인권 문제를 전담하는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을 콕 집어 유엔 차원의 공식 진상조사를 요청하면서 국제사회 차원의 대북 압박이 시작되는 새로운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정부는 이번 사건이 국제 인권규범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데도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참여 등 국제적 책임을 묻는 데 소극적이었다.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제2의 웜비어 사건’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는 북한에 억류됐다가 2017년 석방된 뒤 숨졌다.

이 씨의 유가족들은 이날 유엔 차원의 공식 진상조사를 요청하는 서한을 통해 “전 세계 수많은 자유와 인권 수호 국가들이 제 동생의 희생이 값진 평화의 메신저가 되도록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북한 인권 전문가들은 유가족의 탄원서가 토마스 킨타나 보고관에게 전달돼 유엔 차원의 진상조사가 착수되면 지금까지 남북 간 문제에 머물렀던 이번 사건이 국제적 차원으로 바뀌는 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킨타나 보고관은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북한 인권을 전담하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가 직접 조사에 나서는 것 자체가 국제사회의 인권 문제 제기에 민감한 북한에 대한 압박이 될 수 있다는 것. 신희석 전환기정의구현워킹그룹 법률분석관은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한국과 북한 정부에 직접 서한을 보내 이번 사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할 수 있다”며 “직접 방문 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내는 등 국제사회 공론화에 많은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요청서를 서울 유엔북한인권사무소에 전달한 이 씨 형 래진 씨와 동행한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킨타나 보고관은 최근 사무소 측과 통화해 “유해와 유류품 송환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북한에서 코로나 방역 관련 총살 정책이 존재한다면 심각한 문제이며 (이는) 반드시 폐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요청서 제출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래진 씨는 “5일 만난 반 전 총장이 웜비어 사례가 있으니 그 가족들과 연대해 정확한 내용을 듣고 협력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웜비어 씨의 가족은 2018년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그해 미국 연방법원이 북한에 5억113만 달러(약 5600억 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피살 공무원의 유족들은 북한을 상대로 국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하 의원은 “한국 정부가 응당 해야 할 국민 보호 의무를 저버렸으니 웜비어 씨 사례와 유사하게 (소송이 진행될 수 있는지) 변호사와 법률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6·25전쟁 당시 북한에 억류됐다가 탈북한 국군포로 두 명이 올해 7월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바 있다.

이 씨는 이날 국방부도 방문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뒤 불태워지기 전까지 군이 파악한 첩보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국방부에 요청했다. 이날 이 씨가 요청한 자료는 지난달 22일 오후 3시 반부터 10시 51분까지 군이 북한군 교신을 감청한 녹음 파일과 그날 오후 10시 11분부터 40분 간 이 씨의 시신을 훼손시키는 정황이 포착된 영상 파일이다. 유족 측은 국방부가 정보공개청구를 거부할 경우 행정소송을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신규진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