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거짓말의 역사는 길고, 인간의 본성에 속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거짓말은 속이려는 의도로 하는 것입니다. 남을 다른 길로 이끌려는 것이지요. 태도가 진실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가 하는 말이 항상 진실인 건 아닙니다. 거짓말의 표정은 다양하며 모습을 바꿉니다.
거짓말로 피해를 안 주면 괜찮을까요? 선의로 했어도 본질은 거짓말입니다. 선한 의도였음에도 가끔은 결과가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적대적인 관계라면 진실을 들어야 할 자격이 상대에게 없다고 쳐서 거짓말을 해도 무관하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법적인 차원은 제쳐 두고 도의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정치·외교 분야에선 거짓말을 주저 없이 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같은 편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거짓말도 있습니다. ‘합동작전’으로 집단의 정체성과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시스템 거짓말’은 화려합니다. 첫째, 뚜렷하고 일관성 있게 되풀이합니다. 둘째, 자신들의 주장이 거짓말임을 내부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셋째, 거짓말인데도 확신을 가지고 주장합니다. ‘분리(分離)’라고 하는 심리적 방어기제를 쓰는 겁니다. 넷째, 거짓말임에도 ‘사회 기강 바로잡기’ 같은 ‘고귀한’ 목적이 있다고 스스로 믿습니다. 다섯째, 논란의 본질이 사회 전반의 관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언급하면서 논리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법의 판단을 피하려고 합니다.
시스템 거짓말의 추진력은 집요하고 강력합니다. 시스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유리한 이야기를 만들어 근거로 제시합니다. 논리적인 설득력이 있다고 반드시 신뢰할 만한 근거는 아닙니다. 시스템 거짓말은 법과 윤리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즐깁니다.
개인의 거짓말이든 시스템 거짓말이든 어떻게 찾아내고 대처해야 할까요? 의사가 증상에 기반을 두고 진단하듯이 증상에 근거해야 오진을 피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의 증상으로 열거되는 것들에는 말투나 몸짓의 변화, 표정과 몸의 굳어짐, 애매하게 얼버무리기, 입이나 눈 가리기, 침묵, 사소한 것을 나열해 논점 흐리기 등이 있습니다.
개인의 거짓말과 달리 시스템 거짓말은 분석하지 않으면 거짓말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여러 사람이 일관성 있게 공개적으로 그렇게 말하고, 지지적인 언론 매체를 활용하면서 나름의 정당성을 체계적으로 반복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은 무엇에 대한 방어일까요? 본능적 욕구에 대한 공격, 소망에 대한 도전, 정체성에 대한 위협, 책임질 곤경, 벌 받을 위기, 죄책감, 수치심 등에 대한 반응입니다.
우리 사회를 서구 사회와 비교하면 개인보다는 집단의 가치를 중요시하면서 힘을 다해 지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파생물로 집단이 주도하는 시스템 거짓말을 흔히 접하게 됩니다. 특정 개인을 둘러싼 문제가 사회 쟁점이 되고 파장이 증폭되면 개인의 거짓말은 더 경직된 형태로 표현됩니다. 그러다가 한계에 달하면 스스로 허점을 드러내는 위기가 닥칩니다. 그러면 거짓말의 주체는 개인에서 집단으로 옮겨갑니다. 집단은 상황을 협업으로 처리하려고 체계화된 거짓말을 되풀이합니다. 악순환의 고리를 돌게 됩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