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따라 정부, 7일 법개정안 입법예고 15주~24주 ‘조건부 낙태’ 사유… 기존 성폭행 임신-유전병서 확대 사회경제적 어려움까지 포함시켜… 24주 넘긴 중절은 종전대로 처벌
○ 임신 14주까지는 낙태 무조건 허용
6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낙태를 한 임부(姙婦)와 의사를 각각 처벌하도록 한 형법 조항을 개정해 임신 14주까지는 제한 없이 낙태를 허용하는 것이다. 이 기한까지는 어떤 이유로든 낙태를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또 성범죄에 따른 임신이나 혈족 간 임신, 유전적 질환이 있는 경우 임신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현행 모자보건법을 일부 개정해 아이를 기를 수 없는 사회·경제적 이유를 소명한 때에도 낙태가 가능하도록 했다.
정부가 임신 14주를 낙태 허용 기준으로 정한 것은 이 시기까지는 태아가 사고를 하거나 자아를 인식할 수 없다는 세계보건기구(WHO)와 국내외 의료계의 연구 결과에 따른 것이다. 또 수술 방법이 비교적 간단해 낙태로 인한 합병증이나 모성사망률이 현저히 낮다. 태아의 기형 여부나 성별을 알 수 없고, 여성이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충분한 숙고기간이 필요하다는 점도 고려했다.
당시 헌재는 각계 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임신 기간(40주)을 1기(1∼14주), 2기(15∼28주), 3기(29∼40주) 등 3개 기간으로 구분했다. 1기까지는 임부의 자기 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게 이들 재판관의 의견이었다.
당시 다수의견 재판관 7명 가운데 헌법 불합치 의견을 낸 4명은 “태아가 독자 생존이 가능한 임신 22주 이내에는 국가가 일정 요건을 정해 낙태 허용 여부를 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낙태죄 단순 위헌 의견을 냈던 재판관 3명은 “임신 14주까지는 아무런 제한 없이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해외에서는 임신 12∼16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국가가 많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73년 임부의 낙태 권리를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에서 임신 기간을 3개 구간으로 나눈 뒤 제1기(1∼12주)에는 여성의 낙태를 허용해야 하고, 2기(13∼24주)에는 국가가 낙태 절차에 조건부로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독일 덴마크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임신 12주까지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영국은 의사 2명의 동의를 얻은 경우 임신 24주까지 낙태 수술을 허용하고 있다.
○ 소득 불안정 등 사회·경제적 사유 낙태도 허용
정부 개정안에 따르면 임신 15주부터 24주까지는 임부가 합당한 사유를 소명하면 ‘조건부’로 낙태를 할 수 있다. 대신 낙태 가능 사유의 범위가 예전보다 넓어진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임부 자신이나 배우자가 유전병, 전염병을 앓고 있을 때, 성폭행을 당해 임신했을 때, 혈족 혹은 인척 사이에 임신을 했거나 임부의 건강이 위독할 때 등 5가지 경우에 한해 낙태를 허용해 왔다.
정부는 “현행법이 사회적 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를 인정하지 않아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헌재 재판관들의 지적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헌재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 불합치로 결정하면서 “현행 모자보건법에서 정한 낙태 예외 사유는 매우 제한적이고 한정적”이라며 “소득이 불안정하거나, 양육을 위하여 어느 일방이 휴직하기 어려운 경우, 결혼하지 않은 미성년자가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경우 등 사회적 경제적 사유로 낙태를 갈등하는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강제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도예 yea@donga.com·배석준·김상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