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월 17일, 밴드 밴 헤일런. 왼쪽부터 마이클 앤서니(베이스기타), 새미 헤이거(보컬), 앨릭스 밴 헤일런(드럼), 그리고 에디 밴 헤일런(기타). AP 뉴시스
임희윤 기자
원목가구에 대해선 일자무식이지만 이런 말이 수시로 들리는 가정에서 자랐다. 발화자는 작은형. 현실은 10만 원짜리 국산 기타였지만 언젠가 갖고픈 꿈의 전기기타에 대해 저런 식으로 말하곤 했다. B B 킹에겐 ‘루실’이, 조지 해리슨에겐 ‘루시’가, 에릭 클랩턴에게는 ‘블래키’가 있었다. 반려견이 아니다. 애칭을 붙인 전매특허 기타다. 펜더나 깁슨에서 유명 연주자의 이름을 붙여 생산하는 ‘시그니처 모델’을 언젠가 헌액 받겠다는 것은 건물주와는 비교도 안 될 원대한 꿈이자 목표였다.
#1. 10년 전 J 형과 친해지게 된 계기는 다름이 아니라 그의 휴대전화 번호 뒤 네 자리였다. ‘5150’. 1990년대, 국내에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어떤 이들은 저 번호를 선택했다. 주로 음악가나 음악 관계자, 음악 애호가들이다. ‘5150들’끼리 만나면 번호를 교환하다 비밀결사처럼 눈빛을 빛내기 일쑤였다. ‘5150’은 미국 록 밴드 밴 헤일런이 1986년에 낸 앨범 이름이다.
#2. ‘5150’은 밴 헤일런의 초절기교 기타리스트 에디 밴 헤일런의 홈 스튜디오 이름이기도 했다. 이 앨범은 여기서 녹음됐다. 에디에게는 특별한 시그니처 기타가 있었다. 바로 ‘프랑켄스트랫’이다. 인조 괴물 프랑켄슈타인과 펜더의 대표 기타 브랜드 ‘스트래토캐스터(약어 스트랫)’의 합성어다. 에디가 서로 확연히 다른 소리를 내는 전기기타의 양대 산맥, 즉 깁슨 레스폴과 펜더 스트래토캐스터의 장점을 결합하기 위해 손수 제작한 기타이니 작명 센스가 절묘하다.
#3. 빨강과 검정, 또는 노랑이나 하양의 선이 교차하는 저 프랑켄스트랫 특유의 디자인은 EVH(에디 밴 헤일런) 모델 기타로 복제돼 판매되기도 했다. 에디가 연주한 기타 중 하나는 2011년 워싱턴의 미국역사박물관 ‘문화예술 섹션’이 소장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되기도 했다. 에디와 프랑켄스트랫은 1980년대 미국 하드록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기념비라는 얘기다.
#4. 기타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정확히는 기타 영웅들의 시대다. 여전히 통기타를 들고 어쿠스틱 팝이나 모던 포크 장르를 연주하는 젊은이들이 있고 R&B나 힙합 곡에도 전기기타가 양념처럼 쓰이지만, 연주 속도나 초인적 기교를 놓고 프로레슬러들처럼 다투던 나날은 영화 ‘더 레슬러’(2008년)의 미키 루크처럼 철지난 패션이 됐다.
#5.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타임라인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린다. 한때 기타 픽을 야무지게 쥐던 엄지로 기타줄 대신. ‘프랑켄스트랫’의 빨강과 검정, 그리고 ‘RIP(Rest In Peace·편히 잠들라)’ 메시지가 망막을 채워간다. 전국의, 아니 세계의 ‘5150들’도 그러하리라. 디스토션(원음을 왜곡하고 증폭하는 기타 이펙터)이 잔뜩 걸린 기타 줄은 건드리기만 해도 천둥 같은 소리를 낸다. 천둥의 신들이 황혼을 맞고 있다.
#7. 바이, 길버트, 지미 페이지(레드 제플린), 잉베이 말름스틴, 커크 해밋(메탈리카), 톰 모렐로(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 어제오늘 인스타그램의 타임라인에 수많은 기타리스트들이 6일(현지 시간) 별세한 에디를 추모하는 글과 사진을 올렸다. 하나같이 절절하다. 2004년 영면한 다임백 대럴(판테라)은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에디의 프랑켄스트랫과 함께 묻혔다. 검정과 노랑이 교차하는 ‘범블비(호박벌)’ 모델이다.
3년 전 서울에서 만난 스티브 바이는 이렇게 말했다.
“전기기타를 연주하며 받는 느낌은 인류가 늘 찾아 헤매는 궁극적 자유에 가깝다. 그런 면에서 기타는 여전히 최고의 악기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