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트다운 1945/크리스 월리스, 미치 와이스 지음·이재황 옮김/432쪽·2만2000원·책과함께
폭탄 투하를 이틀 앞두고 열린 히로시마 작전 회의에 참여한 윌리엄 파슨스 해군 대령(왼쪽)과 폴 티베츠 대령. 책과함께 제공
널리 알려진 일련의 사건을 다룬 이야기는 다소 뻔하다. 어려서부터 익히 듣고 배워온 역사적 사건이라면 지루할 법도 하다. 그런데 ‘카운트다운 1945’에는 구구절절한 프롤로그나 서론이 없다. 독자를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투하 116일 전, 1945년 4월 12일로 훅 끌어들인다. 결말을 뻔히 알고 집어든 책임에도 책장을 넘길 때마다 점점 조여 오는 긴박함으로 지루함이 사라진다.
책은 폭스뉴스 앵커이자 지난달 미국 대선의 첫 TV 토론을 진행한 크리스 월리스와 퓰리처상을 수상한 AP통신 탐사보도 기자 미치 와이스가 썼다. 원자폭탄 투하 과정과 그 이후에도 피해 사실을 비밀에 부쳐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카운트다운이라는 콘셉트에 맞춰 그려냈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꼬마(Little Boy)’. 책과함께 제공
이쯤 되면 우리가 몇 단어로 요약해 ‘다 알고 있다’고 여긴 원자폭탄 투하는 새로운 시선으로 보인다. 미국 테네시의 공장에서 동위원소분리장치의 계기판을 지켜보는 업무를 하면서도 자신이 끔찍한 무기 제조에 참여한다는 것조차 몰랐던 10대 소녀, 폭탄 투하 전날 히로시마 집으로 돌아온 열 살 소녀 등 원자폭탄을 둘러싼 사람들의 촘촘한 이야기가 거대 사건 사이사이의 공백을 채운다.
빠른 전쟁 종식과 반인류적 대량살상무기의 사용 사이에서 고민한 각국 정치인들, 원자폭탄 개발에 동원된 저명한 과학자들, 그리고 폭탄 제조에 동원된 군인과 사업 관계자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하나의 거대 사건 안에는 무수히 많은 이해당사자가 개입한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긴박감은 폭탄을 싣고 머나먼 상공으로 날아간 군인들 이야기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지금 우리에게 75년 전 사건의 뒷이야기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9일(현지 시간)에도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2주째 수백수천 발의 폭격을 주고받으며 무고한 사상자를 쏟아내는 중이다. 이탈리아 프로축구리그 세리에A에서 활약하는 아르메니아 국가대표 헨리크 미키타리안은 “침략은 전쟁범죄이자 인도주의에 반하는 재앙”이라고 전 세계인들을 향해 외쳤다. 그리고 그는 “제발 이 전쟁을 멈춰 달라”며 손수 편지까지 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편지는 미국과 러시아의 정상에게 보내졌다. 75년 전 전쟁을 끝내고자 원자폭탄 투하에 합의한 그 국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