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9월 규모 7.1의 강진이 뉴질랜드 제2의 도시 크라이스트처치를 강타했지만 단 2명의 부상자만 나왔다. 다들 “기적”이라고 했지만 피해를 막은 건 엄격한 건축 기준이었다. 뉴질랜드는 1931년 강진으로 256명이 숨지자 강력한 내진 설계를 법제화했다.
▷8일 밤 발생한 울산 남구 주상복합아파트 화재는 하마터면 대형 참사가 될 뻔했다. 강풍주의보가 발효됐고, 오후 11시가 넘어 다수가 잠든 시간이었으며, 33층 고층건물인데 울산엔 고가 사다리차가 없었다. 중간층에서 시작된 불길은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건물 전면을 휘감았다. 하지만 500명이 넘는 주민 가운데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다. 화재경보기가 제때 울렸고, 스프링클러가 작동했으며, ‘타는 냄새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5분 만에 출동한 소방관들이 불길에 대처할 수 있었다. 주민들은 “하늘이 도왔다”고 했지만 서로서로 도왔다. 대피하는 와중에도 이웃집 벨을 눌러 깨우고, 빠져나온 주민들은 혹시 남아 있을 이웃들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전국에 30층 이상 건물은 4792개다. 고가 사다리차는 23층 높이까지만 진압이 가능하며 도심에선 진입 공간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불연성 건축자재와 함께 경보 시스템, 스프링클러 및 방화벽 같은 건물 내 화재 대비 시스템이 화재 시 기적을 만든다. 연간 가장 많은 화재 사망자가 발생하는 겨울이 오고 있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