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혼돈의 美 대선, 초당적 미래전략 논의할 때다[동아 시론/안병진]

입력 | 2020-10-10 03:00:00

예측불허 美대선에 외교안보 불확실성 커져
진보-보수 낡은 對美 관점 인정해야
통합과 열린 사고 한반도 미래 지킨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나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I’ll be back)!”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영화 ‘터미네이터’의 전설적인 대사를 통해 반전을 노렸다. 트럼프는 과거 리얼리티쇼에서 “넌 해고야”라는 대사로 스타가 되었지만 할리우드 영화 속 대통령이 되는 데는 실패한 것 같다. 코로나19 확진 이후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그와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 사이의 격차가 10%포인트에서 심지어 16%포인트까지 벌어지고 있다. 한때 트럼프는 ‘강남좌파’ 질서를 흔드는 혼돈의 에이전트로 환영받았다. 하지만 50% 이상의 시민들은 이제 코로나19와 트럼프의 대통령답지 못한 행태에 서서히 지쳐가고 있다. ‘트럼프 피로증’이 생긴 것이다.

현재 미국의 정치 지형이 정상적이라면 대선 결과는 쉽게 예상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단지 공화와 민주 사이의 일상적인 게임이 아니다. 오히려 기존 게임의 규칙을 지키고자 하는 세력 대 초법적 수단을 포함해 이를 망가뜨리려는 세력 간의 내전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평화적 정권 이양 거부 암시, 신파시즘 세력 묵인, 해외 정보기관 개입 유도 등 모든 초법적 카드를 동원하고 있다.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등 조지 W 부시 전 행정부의 고위 인사들이 대거 바이든을 지지하는 이유이다. 또한 향후 4년이 아니라 40년을 지배할 대법원 판사 지명 전투는 어떤 변수를 만들어 낼지 불확실하다. 앞으로 미 대선은 바이든의 조기 압승에서부터 대법원 판결에 의한 바이든이나 트럼프 승리, 혹은 트럼프의 대법원 판결 거부 소동 이후 승자 결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상황이 다 가능한 시계 제로이다.

‘트럼프 피로증’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그가 재선되면 한반도 상황은 교착 국면에서 벗어날 수는 있지 않을까? 당신이 내전 중인 어느 국가에 가서 그곳 롤러코스터를 용기 있게 탈 수 있다면 생각해 볼 만한 시나리오이다. 트럼프는 이 짜릿한 놀이기구를 통해 노벨 평화상과 통일 ‘대박’, 이방카 트럼프 세습 대통령 후보 만들기를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 정비 불량으로 이 열차가 중간에 탈선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걸 알고 탑승할 필요가 있다. 만약 민주당이 상원에서 다수당이 되면 인권 등의 이슈 때문에 아예 열차가 고공에 멈추어 설 수도 있다. 심지어 미중 간의 난폭한 대결 속에서 기후 재앙, 팬데믹이 더 악화되는 것은 물론이고 삼성 등의 반도체 미래는 더 불확실한 상황에 직면한다.

바이든 당선의 경우에도 그리 즐거운 여행만이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다. 신중한 바이든을 압박하기 위한 김정은의 난폭한 벼랑 끝 전술이 단기적으로는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오직 북한을 카지노 시설용 대지로만 간주하는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 민주당은 북-미 수교의 전제로 인권이란 높은 장애물을 설치해 놓았다. 미중 경쟁에서도 모든 우방국들에 민주주의 가치 수능시험을 요구하기에 더 이상 우리가 좋은 말로 넘어가기도 어렵다. 더구나 바이든의 뉴딜 2.0을 통한 기후악당 국가에서의 대전환 시도는 또 하나의 기후악당 국가인 대한민국에 어려운 적응 과제를 던져준다. 다만 바이든은 실용주의자이기에 중국, 북한과 단계적 타협 및 향후 2년간 대한민국과의 전략적 소통이 가능하다.

이제부터 한반도는 누가 당선되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지각판으로 빨려들어 갈 예정이다. 가장 중요한 건 청와대 및 집권 정당의 겸손과 초당적 포용이다. 이 불확실한 게임에서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아야 하고 모르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민주화운동 진영 및 권위주의적 산업화를 주도한 보수 세력은 둘 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국제 행위자들에 대한 자신들의 관점이 다소 낡았다는 걸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의 한계에 대한 겸손은 곧 초당적 태도로 이어진다.

이 겸손과 포용이라는 전제 위에서 시급히 초당적인 미래전략위원회를 만들고 대통령이 이에 큰 권위를 부여할 것을 이전에 제안한 바 있다. 이 기구는 앞으로 닥칠 한반도 안보 및 반도체, 신재생에너지 산업 등의 경제 전쟁의 위기와 기회 속에서 다양한 시나리오 플랜을 제시해야 한다. 이 기구의 공동 수장은 합리적인 보수와 진보이면서 열린 사고를 가진 인물이었으면 한다. 비록 정치 영역에서는 김영란 전 대법관 같은 이가 희귀종이 되었지만 널리 구하면 못 찾을 것도 없다.

이 미래전략의 최종안보다 더 중요한 건 시민 공동체가 이를 위해 함께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과정 그 자체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면역력과 회복 탄력성을 키워나가는 집단 학습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소크라테스적인 질문을 던지는 ‘테스형’이 되어야 한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