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33층 주상복합 한밤 대형화재 길 잃은 이웃아이 손잡고 함께 대피… 침착한 대처로 큰 인명 피해 면해 소방도 신고 5분만에 발빠른 대응
검게 타버린 주상복합…15시간 30분만에야 완전 진화 9일 오전 울산 남구 달동의 삼환아르누보 주상복합아파트 건물 외벽은 전날 오후 11시 14분부터 이어진 대형 화재에 창문과 외장재가 모두 떨어져 나가고 내부 철골이 심하게 휘어져 있었다. 소방당국은 화재 발생 15시간 30여 분 만인 9일 오후 2시 50분경 불길이 완전히 잡혔다고 밝혔다. 대형 화재로 중상 3명과 경상 90명 등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울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8일 밤 울산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한 삼환아르누보 아파트의 주민 허모 씨(44)는 9일에도 여전히 눈시울이 빨개진 채 목소리가 떨렸다. 허 씨 부부는 화재 당시 9세와 14세인 딸들을 데리고 대피하다 갑자기 밀려든 연기 탓에 손을 놓쳐버렸다.
자녀 생사를 몰라 절망에 빠졌던 부부에게 아이들을 무사히 데려다준 건 바로 이웃 주민들이었다. 허 씨는 “길을 잃고 헤매는 아이들을 한 이웃이 데리고 옥상 피난처로 대피했다고 한다. 이웃들이 아니었으면 우리 모두 큰일 날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해당 아파트에는 393명이 거주하고 있었으나, 심각한 인명 피해는 나오지 않았다. 주민들은 “긴박한 상황에도 서로를 챙긴 주민들과 침착하게 대처해 준 소방당국 덕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민들은 긴급한 상황에서도 이웃들을 먼저 챙겼다. 12층에서 화재 의심 상황을 확인한 주민은 곧장 119에 신고했고, 아파트 관리소에 상황을 전달했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 A 씨는 “여러 이웃들이 대피하면서 적극적으로 다른 집 문을 두드리고 벨을 눌러 피신을 종용했다. 아이나 노인 등의 이동도 적극 도왔다”고 말했다. 소방 관계자는 “젖은 수건 등으로 입과 코를 막고 이동하는 등 대피 수칙을 잘 지킨 것도 피해를 줄였다”고 전했다.
소방당국의 대응도 발 빨랐다. 최초 신고를 받은 지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상황을 파악했다. 불이 번지자 대응 2단계를 조기 발령했고, 신속히 주민 대피를 도왔다. 화재 현장에는 소방 930명과 경찰 및 지방자치단체 등 유관기관 75명 등 1005명의 인력이 투입됐다. 소방 관계자는 “정확한 사고 원인은 정밀 감식 이후에야 알 수 있다”고 밝혔다.
화재로 인한 연기 흡입 등으로 90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민 중 150여 명은 인근 호텔 등에 머무르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