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자리에 서면 무슨 말부터 할까 많이 생각해보았지만 마음 속 진정은 ‘고맙습니다’ 이 한 마디뿐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일 27분간의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연설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말은 “고맙다”였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고맙다” “감사하다” “고마운 마음” 등의 표현을 모두 17번 사용했다. “(믿음에) 보답하지 못해 면목이 없다”고도 했다. 대북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홍수와 태풍 등 자연재해의 삼중고로 경제난에 직면한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최고지도자가 직접 민심을 달래는 모습을 연출해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이날 “(내가) 인민의 크나큰 믿음을 받아 안기만 하면서 제대로 한번 보답이 따르지 못해 정말 면목이 없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눈물을 흘렸다. 수해 피해 복구 현장에 동원된 평양 노동당원들을 언급하면서는 목소리가 떨리기도 했다. 그는 “마땅히 이 자리에 있어야 할 우리의 핵심들, 나의 가장 믿음직한 수도당원사단 전투원들에게 전투적 고무와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면서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는 모습을 보였다.
김 위원장은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북한 주민이 겪는 고통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탓으로 돌렸다. 그는 “지금 이 행성에 가혹하고 장기적인 제재 때문에 모든 것이 부족한 속에서 비상방역도 해야 하고 자연피해 복구도 해야 하는 엄청난 도전에 직면한 나라는 우리뿐”이라고 했다. 이어 “이 모든 시련은 우리 매 가정, 매 공민(국민)들에게 무거운 짐과 아픔이 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아직 풍족하게 살지는 못한다”고 했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이날 연설에 대해 “격한 표현으로 인민에 대한 사랑을 내세웠으나 독재자의 전형적인 선전선동”이라고 지적했다. 북한 외교관 출신의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페이스북에 “(김정은이 고맙다는 말을 강조한 것은) 자신도 정책 실패를 인정한다는 걸 보여주며 그만큼 북한 내부가 힘들다는 것”이라고 썼다.
최지선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