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열병식]연설문에 나타난 대미-대남 전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직전 연설에서 수해 피해 복구 현장에 동원된 당원, 군인들을 언급하면서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고 있다(왼쪽 사진). 하지만 김 위원장은 이어 열린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전략무기가 등장하자 함박웃음을 지었다. 노동신문 뉴스1
김 위원장은 이날 “적대세력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가중되는 핵위협을 포괄하는 모든 위험한 시도들과 위협적 행동들을 억제하고 통제 관리하기 위해 자위적 정당방위 수단으로 전쟁억제력을 계속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우리의 군사력은 우리 식, 우리의 요구대로, 우리의 시간표대로 그 발전 속도와 질과 양이 변해가고 있다”며 “불과 5년 전 이 장소에서 진행된 당 창건 70돌 열병식과 대비해 보면 그 발전의 속도를 누구나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시간은 우리 편에 있다”고 강조했다. “전쟁 억제력이 남용되거나 선제적으로 쓰이지는 않겠지만 어떤 세력이든 우리를 겨냥해 군사력을 사용하려 든다면 가장 강력한 공격적인 힘을 선제적으로 총동원하여 응징할 것”이라도 했다.
‘자위적 핵억제력 보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동시에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는 핵무기 선제 사용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한 것. 전문가들은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누가 당선되든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바꾸지 않는 이상 비핵화 없이 전략 무기 개발을 계속하겠다며 북핵 문제의 주도권 행사 뜻을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핵무기를 언제 어떻게 사용할지 김정은식 ‘핵 독트린’을 강조했다”고 했다.
동시에 김 위원장은 10일 연설에서 한국에 대해서는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들에게 따뜻한 이 마음을 정히 보내며 하루빨리 보건 위기가 극복되고 북과 남이 다시 두 손을 마주 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약 28분 연설 가운데 대남 관련 메시지는 이 한 대목뿐이었지만 표면상 유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한반도 전문가들은 미국 대선을 앞두고 일단 남북관계 개선 여지를 열어 놓는 것이 올해 말 내년 초 펼쳐질 한반도 안보 지형 개편 과정에서 이니셔티브를 쥐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재차 강조하면서 남북 대화에 적극적인 상황도 좋은 기회라고 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여전한 상황에서 큰 반전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관측이 더 많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우리 국민 피살 사건 공동조사에 응하지 않으면서 코로나19 종식 이후를 언급한 것만 봐도 관계 개선에 대한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권오혁 hyuk@donga.com·윤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