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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언어’에 실망하는 이유[동아광장/김석호]

입력 | 2020-10-12 03:00:00

‘愛民’ 빠진 박근혜 전 대통령 담화문, 문 대통령은 정파적 발언으로 아쉬움
힘들수록 리더의 균형-책임감 필요한데… 대통령의 말에서 희망을 찾기 어렵다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아직도 꿈속에 있는 것만 같다. 저녁 어스름 는개가 시야를 가린 듯 막막한 느낌으로 2020년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아이들은 학교 대신 집과 학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학원에 보낼 처지가 못 되는 부모는 아이를 집에 남겨둔 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일터로 간다. 골목길 상권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드물다. 소상공인들의 한숨은 깊어간다. 무료급식소에 끼니를 의지하던 사람들은 갑자기 사라진 따뜻한 밥과 국을 찾아 거리를 헤맨다. 평소에도 적극적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은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감염병의 세상이 야속하다. 요양원에 갇힌 노인들은 추석에도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 언제 폭증할지 모르는 확진자 수에 촉각을 곤두세운 의사와 간호사는 24시간 내내 긴장 상태다.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대통령의 언어는 특별한 힘을 갖는다. 그의 언어에 위로를 받기도 하고 내일이면 흐린 시야가 갤 것이란 희망을 찾는다. 대통령은 결연하게 균형을 잡고 모든 것의 최종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듬직함을 보여야 한다. 어느 한쪽을 챙길라치면 다른 쪽에서 불만이 나오겠지만, 대통령은 그 시기 가장 힘든 사람들부터 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누구도 내쳐지지 않았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참 어려운 자리다. 그래서 나는 대통령의 최고 덕목을 코로나19처럼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완벽하진 않더라도 위기를 이겨내려는 모든 노력의 뒷배가 자신이란 신뢰를 주는가와 더 힘들 사람들, 가장 슬플 사람들, 소수여서 그 아픔이 드러나지 않을 사람들을 어떻게 보듬는가에서 찾는다. 내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일말의 기대를 거둔 것도 세월호 참사가 있고 한 달도 더 지난 후 미적대다 발표한 담화문 때문이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담화문에는 경천애민(敬天愛民)은 없고 이장폐천(以掌蔽天)만 있었다. 해경 폐지, 해수부 비리 척결, 행정부 개혁 등과 같은 국가 대개조 위장막에 숨어 세월호 참사의 최종 책임을 회피하고, 유가족의 아픔과 국민의 충격을 외면하고 있었다. 세월호는 해상에서 발생한 교통사고가 아니다. 국민보다는 자기가 속한 정치 패거리(faction)와 정권의 안위만 생각한 담화문이었다. 국민이 의지할 수 있는 대통령의 언어는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 모두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적 우리(social cage)’에 갇혀 있는 이상, 서로 의존하며 공동체의 진보와 재생산에 힘을 합친다. 그리고 그 정점에 대통령이 있다. 그런데 ‘사회적 우리’의 존립을 위협하는 것은 각 분야 엘리트들이 만드는 ‘사회적 봉쇄(social closure)’이다. 이는 계층, 직업, 인종, 종교, 지역, 이념 등의 구분에 의한 네트워크의 공고화를 의미하며, ‘사회적 봉쇄’가 사회의 보편적 문법이 되면 각자 집단만의 이익을 추구하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는 눈감게 된다. 힘든 사람은 더 힘들어지고 아픈 사람은 더 고통받는 현실이 당연해진다. 대통령도 정치인이어서 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의 언어에는 ‘사회적 봉쇄’의 그림자가 없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언어는 ‘사회적 봉쇄’에 바탕을 둔 정파 대표의 정체성에 더 가깝다. 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북한군의 해수부 공무원 피살에 대해 유감과 애도, 위로를 표하면서도, 야만적인 범죄의 최종 책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과를 높이 평가하고 남북 군사통신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민의 생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허망하게 남겨진 유가족에 대한 위로에만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문 대통령은 해수부 공무원 피살이 알려지기 직전 미국에서 발표한 종전선언 천명의 정당성을 부각하며 ‘사회적 봉쇄’를 지향하는 정치인의 길을 택했다. 비슷한 사례는 많다. 의료 현장에서 고생하는 간호사를 격려하고 위로하고 싶다면 그들의 영웅적 헌신과 희생만을 대통령의 언어로 담으면 된다. 그들의 활약을 인정하고 현장을 계속 지킬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과 개선을 말하면 충분하다. ‘전공의 등 의사들이 떠난 의료 현장’으로 시작해 현장에서 방호복을 못 벗고 쓰러진 의료진 ‘대부분이 간호사들’이라는 표현으로 간호사와 의사의 상호 ‘사회적 봉쇄’를 자극하는 것은 대통령의 언어가 아니다. 코로나19의 공포가 여전한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 희부윰하고, 여전히 우리는 마스크 쓴 채 내일을 가늠하지 못한다. 그 불안한 상태를 벗어나 희망을 찾으려 한다면 대통령의 언어에서는 기대할 만한 게 없을 것 같다.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