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愛民’ 빠진 박근혜 전 대통령 담화문, 문 대통령은 정파적 발언으로 아쉬움 힘들수록 리더의 균형-책임감 필요한데… 대통령의 말에서 희망을 찾기 어렵다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이럴 때일수록 대통령의 언어는 특별한 힘을 갖는다. 그의 언어에 위로를 받기도 하고 내일이면 흐린 시야가 갤 것이란 희망을 찾는다. 대통령은 결연하게 균형을 잡고 모든 것의 최종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듬직함을 보여야 한다. 어느 한쪽을 챙길라치면 다른 쪽에서 불만이 나오겠지만, 대통령은 그 시기 가장 힘든 사람들부터 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누구도 내쳐지지 않았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참 어려운 자리다. 그래서 나는 대통령의 최고 덕목을 코로나19처럼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완벽하진 않더라도 위기를 이겨내려는 모든 노력의 뒷배가 자신이란 신뢰를 주는가와 더 힘들 사람들, 가장 슬플 사람들, 소수여서 그 아픔이 드러나지 않을 사람들을 어떻게 보듬는가에서 찾는다. 내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일말의 기대를 거둔 것도 세월호 참사가 있고 한 달도 더 지난 후 미적대다 발표한 담화문 때문이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담화문에는 경천애민(敬天愛民)은 없고 이장폐천(以掌蔽天)만 있었다. 해경 폐지, 해수부 비리 척결, 행정부 개혁 등과 같은 국가 대개조 위장막에 숨어 세월호 참사의 최종 책임을 회피하고, 유가족의 아픔과 국민의 충격을 외면하고 있었다. 세월호는 해상에서 발생한 교통사고가 아니다. 국민보다는 자기가 속한 정치 패거리(faction)와 정권의 안위만 생각한 담화문이었다. 국민이 의지할 수 있는 대통령의 언어는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 모두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적 우리(social cage)’에 갇혀 있는 이상, 서로 의존하며 공동체의 진보와 재생산에 힘을 합친다. 그리고 그 정점에 대통령이 있다. 그런데 ‘사회적 우리’의 존립을 위협하는 것은 각 분야 엘리트들이 만드는 ‘사회적 봉쇄(social closure)’이다. 이는 계층, 직업, 인종, 종교, 지역, 이념 등의 구분에 의한 네트워크의 공고화를 의미하며, ‘사회적 봉쇄’가 사회의 보편적 문법이 되면 각자 집단만의 이익을 추구하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는 눈감게 된다. 힘든 사람은 더 힘들어지고 아픈 사람은 더 고통받는 현실이 당연해진다. 대통령도 정치인이어서 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의 언어에는 ‘사회적 봉쇄’의 그림자가 없어야 한다.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