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고층 건축물(50층 혹은 높이가 200m 이상)은 건축법에 따라 30개 층마다 대피층을 두어야 한다. 2010년 부산의 38층 주상복합 마린시티 우신 골든스위트 화재를 계기로 생겨난 규정이다. 삼환아르누보는 33층으로 초고층이 아니어서 대피층 설치 의무는 없지만 15층과 28층에 대피층을 두어 인명 피해를 막았다. 특히 28층 대피층에선 먼저 도착한 일가족이 30층 창문으로 뛰어내린 초등학생을 맨몸으로 받아내는 등 위층에 사는 갓난아기와 임신부를 포함해 10여 명을 구조했다. 대피층이 미니 옥상 같은 야외형 발코니 구조로 설계돼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대피층은 건물 한 층을 통째로 비워둔 형태다. 삼환아르누보 15층 대피층이 그렇다. 대피층 내부엔 화염과 연기를 막아내는 설비와 공기호흡기, 식수가 준비돼 있다. 대피층의 위아래 층은 층간소음이 덜해 ‘로열층’ 대접을 받는다. 대피층 위층은 어린 자녀를 둔 가구가, 아래층은 수험생 자녀를 둔 가구가 선호한다.
▷30∼49층 준초고층도 건물 중간 지점에 대피층을 두어야 하지만 지상으로 통하는 직통계단 설치로 대체할 수 있다. 초고층과는 1개 층 차이로 대피층 설치 의무에서 벗어나 있는 셈이다. 초고층 아파트들이 대개 49층까지만 짓는 꼼수를 부리는 이유다. 고층 빌딩은 수직적 구조가 화염이나 연기를 삽시간에 건물 전체로 확산시키는 굴뚝 효과를 낸다. 지난해까지 3년간 30층 이상 건물에서 493건의 화재가 발생해 5명이 숨졌다. 삼환아르누보 대피층의 기적을 계기로 고층 건물의 화재 관련 법규에 사각지대가 없는지 따져봐야 한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