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임덕 막기 위해 집권初心 뒤집는 역주행 공정과 정의 與 정치적 자산 손절 불가피
정연욱 논설위원
코로나 방역의 엄중함을 모르진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개천절, 한글날 광화문광장은 경찰 차벽으로 에워싸고 불심검문까지 벌이면서도 인파가 몰린 주변 놀이공원엔 손을 놓은 그 이중 잣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방역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했지만 광화문광장에서 반정부 시위를 예고한 보수단체가 타깃이었다.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국민들이 ‘문재인 퇴진’을 요구한다면 광화문광장에 나가 끝장 토론을 하겠다고 한 발언은 빈말이었다.
집권세력은 그동안 개인의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 가치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이번엔 일반 시민들의 인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분증까지 일일이 검사한 불심검문이 등장했다. 오죽하면 보수단체와 정반대의 길을 걸어온 민변과 참여연대마저 문재인 정권의 이 같은 공권력 남용을 비판했겠는가. 자유와 인권의 가치도 적과 동지만 있는 정치공학 앞에선 무력해진 것이다.
우리 국민을 위협하는 해적 소탕을 위해 먼 이역 바다에 청해부대를 보내고, 낚싯배 사고에도 대통령과 청와대 수석들이 묵념까지 한 것은 국민 안전이 국가의 엄중한 책임이라는 대의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 의한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처하는 모습은 진의를 의심스럽게 한다. 아직 진상조사도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여권은 월북 단정에 더 매달리고 있다. 제대로 공개도 못 하는 감청정보 외에는 뭐 하나 월북을 뒷받침할 만한 정황이나 증거가 없는데도 말이다.
이런 와중에 여당 중진은 “떠내려갔거나 혹은 월북했거나 거기서 피살된 일이 어떻게 정권의 책임인가”라고 말했다. 공무원의 피살 과정을 죽 지켜본 정부가 북측도 이용한 국제상선통신망을 통한 최소한의 구조 요청조차 하지 않았는데도 정부 책임이 없단 말인가. 더욱이 6년 전 세월호 사고 때 ‘박근혜 7시간’을 공개하라며 대정부 총공세에 나선 과거는 잊어버렸나.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직후 트로츠키는 크렘린궁의 한 식당에서 레닌과 식사하면서 “이런 곳에서 웨이터에게 서빙 받으며 밥 먹으려고 혁명했던 게 아닌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권력 쟁취 후 혁명 당시 초심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였을 것이다.
지금 여권에선 그나마 트로츠키 정도의 성찰도 ‘금기(禁忌)’가 돼버린 느낌이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힘들게 쌓아올린 ‘친문의 아성’이 무너진다는 위기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걸어온 길을 외면할수록 여권이 외쳐온 공정과 정의의 가치는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이 변곡점에서 민심은 또 한 번 요동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