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산업1부 차장
4년 전엔 명품이 있는 1층부터 여성, 남성, 아동 매장까지 절간처럼 조용하다 주로 고층에 있는 면세점 층만 중국인 관광객이 바글바글했다. 2년 전부터는 한동안 조용하던 명품 매장 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 당시 한 백화점 바이어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중국 관광객이 떠났지만, 집값이 팍팍 뛰니 ‘자산 효과’로 강남 소비자가 대거 돌아왔다”고 말했다.
요즘은 어떨까? 명품 매장 앞 줄은 여전히 긴 가운데, 가전과 리빙 소품 매장에 사람이 몰리는 게 눈에 띄었다. 실제로 3분기(7∼9월) 주요 백화점 점포 매출에서 명품과 가전 비중이 전년 동기 대비 약 10%포인트 올랐다고 한다.
보복 소비나 펜트업(pent-up·억눌렸던 소비가 폭발하는 현상) 수요가 몰린 덕도 있다. 하지만 재난지원금 효과가 있었던 2분기(4∼6월)에 이어 3분기에도 깜짝 실적이 이어지는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소비의 뉴노멀이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집’, ‘고급화’, 그리고 ‘자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소비의 시대다.
실제로 민간 소비 지출은 코로나19 이전 대비 위축됐는데, 집에 있는 TV, 냉장고, 가구에는 돈이 몰리고 있다. 반면 집 밖에서 필요한 옷이나 자동차 휘발유 등은 회복세가 더디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집에서 멀어질수록 장사가 안된다”고 했다. 65인치 이상 고급 TV나 1000만 원에 육박하는 냉장고가 잘 팔리는 점도 눈에 띈다. 럭셔리로 승부를 보려는 기업이 점점 늘고 있다. 한동안 소형 엔트리카로 젊은층을 잡아 보려던 메르세데스벤츠는 다시 럭셔리카에 집중한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펜트업 소비라도 가능한 중상층 소비자를 잡기 위해선 고급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엔트리카보다 럭셔리카의 이익률이 높다.
내수가 중요한 시대라는 점도 중요한 변화다. 여행을 못 가니 전 세계 소비자들이 자기 나라에서 돈을 쓰고 있다. 한 전자업체 관계자는 “삼성, LG 모두 드러내놓고 말하진 않지만 국내 가전 매출이 연일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 중”이라고 귀띔했다. 명품 시장도 들썩인다. 원래 유럽 현지에서 팔리는 명품의 절반은 아시아 관광객이 사던 물량이었지만 이제 중국인도 한국인도 자국에서 산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올해 중국 명품 소비는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소비 지출이 크게 늘지 않는 상황에선 누군가의 깜짝 실적은 누군가의 실적 쇼크다. ‘서프라이즈’와 ‘쇼크’의 갈림길에서 뉴노멀에 올라타기 위한 기업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김현수 산업1부 차장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