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2012년 이명박 정부 5년 차 이상득 전 의원(왼쪽 사진)과 2016년 박근혜 정부 4년 차 안종범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등 정권 실세를 구속하는 ‘살아있는 권력’ 수사를 계속했다. 동아일보DB
최우열 정치부 차장
검찰이 2002년 김대업 수사, 2007년 BBK 수사로 대선 정국에 영향을 미쳤고, 2006년 현대차그룹 비자금 사건과 2008년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 등으로 경제계를 뒤흔든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검사들의 자화자찬 무용담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이런 식이다. “기업은 털어(수사해) 줘야 잘 된다. 삼성, 현대 수사 이후 대대적인 혁신과 성장이 있었다.” “내가 ‘입고’한 배지(국회의원)만 ‘한 다스’다. 그 후 정치가 깨끗해졌고 정치 발전이 있었다.”
물론 이 같은 다소 오만할 정도의 인식이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견제라는 측면에선 순기능도 했다. 검찰은 2012년 이명박 정부가 5년 차에 접어들자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구속했다. 당시 수사팀의 일원이었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해 국정감사장에서 “대통령 측근과 형을 구속할 때 (청와대가) 별 관여가 없어 상당히 쿨하게 처리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4년 차 ‘최순실 사건’을 놓고선 형, 동생 하던 당시 김수남 검찰총장과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등을 돌리는 일도 있었다.
조국-추미애 전·현 법무부 장관의 압박과 검찰 앞에 버티고 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사면초가 속의 ‘윤 총장 가족 리스크’ 등 전례 없는 삼중고가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지만, 거악(巨惡) 수사와 기소라는 검찰 본연의 ‘직무평가’만 한다면 아쉽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검사들의 무용담이라곤 이전과 달리 ‘추 장관 보좌관 전화 관련 진술 누락’ ‘옵티머스 사건의 여권 관련자 연루 진술 누락’ 같은 비굴한 기록밖에 없다.
그러나 여전히 검찰의 힘은 크다. 요즘 여야 정치권에선 ‘옵티머스, 라임 사건’과 총선 관련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두 가지를 놓고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이 많다. 여권 관련자들이 많은 옵티머스-라임 사건에 대해선 여야 공히 4년 차 정권과 검찰의 운명을 동시에 가를 중대 사건으로 보고 있고, 총선 기간 벌어진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가 완성되는 14일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특히 선거법 사건으로 수사를 받는 의원들은 물론이고 야당 지도부도 청와대나 검찰을 직접 자극하는 민감한 사안은 가급적 14일 이후로 넘기는 기류다. 2016년 총선 직후에도 ‘최순실 사건’의 정치권 격돌은 선거법 공소시효가 끝난 10월 중순 이후부터 시작됐다. 당시에도 검찰이 야당(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더 많이 기소해 논란이 됐다. 그런데 정권이 바뀐 뒤 법원이 야당이 된 새누리당-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소속 의원 등 10명에게 릴레이로 당선무효형을 선고할 동안 여당(민주당) 의원은 모두 의원직 유지로 결론 내려 정권교체기 검찰-법원 모두 공정성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검찰보국’과 같은 시대착오적 오만함도 버려야 할 생각이지만, 검사 개개인이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누워 버리는 ‘가을 벼’가 되는 것은 검찰뿐 아니라 정치에도 도움이 안 된다. 여야도 자신들과 직접 관련된 수사라면 검찰 본연의 직무에 충실했다는 진짜 무용담을 기다려 보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최우열 정치부 차장 dns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