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이 책을 읽으니 더 많은 의학 정보들이 여성에게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테면 원치 않은 임신을 했을 경우 동네 어느 산부인과에 가야 임신중절 시술을 받을 수 있는지, 그 비용은 얼마이며, 다음 날 출근을 할 수 있는지, 어느 병원이 더 안전한지 등에 관하여.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를 처벌하는 법이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1953년 형법 제정 후 66년 만의 변화였다. 드디어 여성이 원치 않은 임신과 출산, 몸에 대한 통제로부터 해방의 길이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2020년 10월 7일 정부는 ‘낙태죄’를 완전 삭제하는 대신, 임신중단을 부분적으로 허용하겠다는 ‘입법예고안’을 내놓았다. 임신 주수에 따라, 허용 사유에 따라 제한을 두고 일부 임신중단만을 허용한 것이다. 이는 명백한 퇴행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짓 히어는 낙태가 살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 “낙태 횟수를 0건으로 줄이기 위해 사춘기에 도달한 모든 남자 청소년에게 정관수술 의무를 부과하는 건 어떨까요? 훗날 그 남성과 배우자가 아이를 갖고 싶어지면 풀어주는 걸로요!” 그러자 누군가 외쳤다. “어떻게 그런 말을…. 정관수술 강제는 신체 자율권을 침해하는 거잖아요!” “맞아요! 하지만 출산을 강제하는 것만큼 심각한 침해는 아니잖아요?” 10분이면 통증 없이 끝나는 정관수술도 강제하면 반발할 사람들이 품는 데만 열 달이 걸리고, 목숨이 달려 있고, 누군가의 평생을 책임져야 할 수도 있는 일을 ‘생명은 소중하다’는 이유로 비판한다. 잠재적 생명보다 중요한 건 눈앞에 살아 있는 생명체인 여성이다.
강한 규제는 낙태를 없애지 못한다. 다만 위험한 낙태를 만들 뿐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인생과 자신이 책임지게 될 다른 생명에 대해 다른 어떤 누구보다도 가장 숙고할 것임을 믿기 때문에 낙태합헌을 지지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어떤 여성이 낙태를 한다면, 그건 그 여성이 자기 인생에 책임을 지기 위해 행하는 가장 무거운 결정일 것이다. 죄라고 할 수 없다.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