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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도, 호날두도 없지만[권용득의 사는게 코미디]〈27〉

입력 | 2020-10-13 03:00:00


권용득 만화가 그림

권용득 만화가

서너 달 전 일이다. 안 그래도 무거운데 청소할 때마다 유선 청소기 몸통의 바퀴가 자꾸 빠져서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아내는 이참에 고장 난 유선 청소기를 무선 청소기로 바꾸자고 했다. 나는 아내에게 모든 권한을 일임하고 아내의 선택을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아내는 이튿날부터 무선 청소기에 관한 논문이라도 쓸 것처럼 이것저것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내 말에 따르면 무선 청소기 세계에서는 두 기업의 제품이 축구 선수 메시와 호날두처럼 각광받고 있었다. 두 기업의 제품은 모든 면에서 유선 청소기의 성능을 압도하는 듯했고, 무선 청소기만 있다면 더러운 집이 당장 깨끗해질 것만 같았다. 다만 두 기업의 제품 모두 우리 집 형편에는 너무 비쌌다.

때마침 고용보험에 가입한 적 없던 나는 고용노동부로부터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지난해 특정 기간 수입에 비해 올해 특정 기간 수입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셈이다. 코로나19의 대유행이 아니더라도 나 같은 프리랜서의 수입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지만, 어쨌든 그 돈이면 무선 청소기를 충분히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무선 청소기를 과감히 지르려던 찰나, 이사가 겹치는 바람에 통장에 입금됐던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은 모두 이사 비용으로 빠져나갔다.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유선 청소기를 불편한 대로 쓰면서 어느 정도 적응이 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아내는 눈여겨봤던 메시와 호날두의 단점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흡입력이 신통치 않다든지, 배터리 수명이 짧다든지, 완벽한 줄 알았던 메시와 호날두에게도 단점이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모든 축구팀에 메시와 호날두가 있는 건 아니다. 메시와 호날두 없이도 곧잘 이기는 축구팀처럼, 세상의 대부분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 이 어려운 시기를 저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견디고 있을 테고, 그나마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요즘 같은 시기에는 심야 영업만 하던 동네 호프집이 점심시간마다 한식 뷔페식당으로 돌변하더라도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건 아내와 나도 마찬가지다. 돈이 되는 일을 가릴 처지가 아니고, 게다가 애초에 청소는 먼지가 잔뜩 쌓여서 굴러다닐 때까지 미루기 일쑤다. 청소도 자주 하지 않는 판에 유선 청소기를 무선 청소기로 다급하게 교체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이런 식으로 ‘현타(현실 타협)’를 반복하다 보니까 고장 난 유선 청소기가 갑자기 메시와 호날두에 비해 ‘가성비’가 뛰어난 손흥민으로 보였다. 말하자면 결국 무선 청소기는 아직 못 샀다는 얘기다. 간혹 여윳돈이 생겨도 매번 기다렸다는 듯 여러 가지 일이 생겼고, 올해 안에 무선 청소기를 살 수 있을까 싶다. 어쩌면 아내와 나는 당분간 우리 집 손흥민을 더 아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내 말은, 손흥민 파이팅!

 
권용득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