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펀드 설정과정 집중 조사
김재현 옵티머스자산운용 대표(50·수감 중)가 2019년 6월 11일 여의도의 NH투자증권 본사를 찾아가 ‘공공기관 매출채권 펀드’에 대해 설명하며 제시한 서류는 파워포인트(PPT) 형식의 얇은 문서였다. 제안서에는 상품 투자위험등급이 전체 6등급 중 두 번째로 위험성이 낮은 ‘5등급’으로 기재돼 있었지만 이는 옵티머스가 직접 매긴 것이었다.
검찰은 옵티머스 펀드의 90%가량을 판매한 NH투자증권의 펀드 설정 과정이 석연치 않다고 보고 있다. 반면 올 7월 검찰에 고발인 신분으로 출석한 NH투자증권 실무진은 “공공기관 매출채권 펀드가 흔하지는 않았지만 상품구조가 간단해 검토하는 데 문제가 없었고, 운용사 자체 등급 부여도 제도상 그대로 따르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 NH 측이 먼저 방문 요구, 현장에서 승낙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2019∼2020년 NH투자증권이 54호까지 판매한 ‘옵티머스크리에이터’ 시리즈 펀드가 설정된 초기 단계부터 몇 가지 의심스러운 정황을 포착했다. 2019년 6월 NH투자증권에 직접 펀드 상품을 소개한 김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NH투자증권 관계자들과 간단한 질의응답을 한 뒤 펀드를 언제 설정해줄 수 있는지 물었는데 ‘바로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펀드 설정날짜를 바로 지정하자는 얘기도 나왔다”고 말했다. 또 “(설명한 지) 이틀 만에 펀드 설정을 한 것은 굉장히 빠른 것이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NH투자증권의 ‘역제안’이 있기 전 김 대표는 옵티머스의 고문이었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정영제 전 옵티머스대체투자 대표(수배 중) 등으로부터 “NH투자증권의 정영채 대표이사에게 연결해줄 수 있다”는 취지의 얘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정 전 대표는 2019년 4월 말 정 대표와 통화를 했다면서 김 대표에게 “기다려보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또 비슷한 시기 이 전 부총리와 또 다른 고문인 양호 전 나라은행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NH투자증권과 또 다른 유력 증권사 대표이사를 연결해줄 수 있다는 취지의 대화가 오갔다고 주장했다.
이후 NH투자증권 연락을 받은 김 대표는 3차 방문 설명을 한 지 이틀 만인 6월 13일 338억 원 규모의 첫 펀드 설정에 성공한다. NH투자증권은 엿새 뒤인 6월 19일 320억 원의 두 번째 펀드를 개설해줬다. NH투자증권이 본격 판매에 나서자 2018년 2284억 원 규모였던 옵티머스 펀드 수탁액은 1년 만인 2019년 말 4745억 원으로 2배 넘게 뛰었다.
○ 김 대표, 펀드 판매 일주일 뒤 정 대표 만나
검찰은 2019년 6월 13∼19일 옵티머스가 658억 원의 펀드 설정에 나선 지 일주일 뒤 김 대표가 옵티머스 관계자 2명과 함께 정 대표를 만난 사실도 밝혀냈다. 압수된 김 대표의 휴대전화에 관련 일정이 나온 것이다. 김 대표와 함께 정 대표를 만난 관계자는 전 군인공제회 이사장 출신인 김모 고문과 이모 부띠크성지건설 대표였다. 다만 김 대표는 “정 대표와 친분이 있던 김 고문 주선으로 만난 자리라 펀드 관련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검찰은 이 대표가 ‘NH의 넘버3’라며 또 다른 NH본부장급 간부를 김 대표에게 소개해줬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이에 대해 정 대표는 “(펀드 판매 관련) 외부 압박은 전혀 없었다. 회사 메커니즘상 불가능한 구조”라며 “식사 자리에서도 옵티머스펀드에 관해 얘기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 자신들이 설정한 펀드에 지배회사 돈 투자
검찰은 옵티머스 측이 NH투자증권 펀드 판매를 돕기 위해 자신들이 운용하는 펀드에 자금 경유지 및 저수지 역할을 하던 트러스트올과 셉틸리언 명의로 펀드 가입을 한 사실도 확인했다. 기존 펀드 자금으로 신규 설정한 펀드에 가입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NH투자증권본사에서 근무하는 부장이 지점에 연락해 “옵티머스를 잘 도와주라”고 했다는 NH투자증권 직원의 진술도 확보했다. NH투자증권 측은 “2017년부터 9개 증권사가 9500억 원가량 판매해왔던 상품으로 트랙레코드가 안정적이었다”면서 “김 대표로부터 2019년 5, 6월 두 차례에 걸쳐 설명을 들었고 졸속 심사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신동진 shine@donga.com·위은지·김자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