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이후 문학-기사 분석 근대엔 여성의 고된 시집살이 상징 산업화 이후엔 권력 향한 분노로
경희대 인문학연구원 산하 ‘HK+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 박성호 최성민 교수는 의료와 문학의 융합연구를 통해 근현대의 화병 변화 양상을 분석한 ‘화병의 인문학’(사진)을 최근 펴냈다. 1900년대 이후 문학작품, 기사, 잡지 등을 분석했다.
근대소설에서는 고된 시집살이를 참는 여성들이 화병에 걸린 것으로 묘사됐다. ‘안의성’(1912년)의 주인공 정애는 시어머니가 반대하는 결혼을 했다가 시누이들의 모함을 받고 친정으로 쫓겨나 화병에 걸린다.
산업화, 민주화 시대에는 사회와 권력에 대한 분노로 확대됐다. 1920∼1997년의 신문 기사를 분석한 결과 화병이라는 단어는 1988년에 가장 많이 쓰였다. 1987년 1월 경찰의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씨의 부친 박정기 씨는 동아일보 1988년 1월 13일자 ‘철아, 아부지가 다시 왔대이’라는 기사에서 “정권의 추태를 보다 못해 울홧병까지 생겼다”고 말한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화병에 걸린 듯한 젊은 세대의 묘사도 나타났다. 김영하 소설 ‘퀴즈쇼’(2007년)에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가장 똑똑한 세대’인 젊은 주인공이 “우리는 왜 다 놀고 있는 거야? 왜 모두 실업자인 거야?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라며 울분을 토한다.
연구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2017년 대통령 탄핵 등을 거치며 화병의 진화는 세대별 계층별로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끝을 맺는다. 최 교수는 “문학을 분석하는 연구로 출발했는데 사회상과 맞물린 일종의 문화연구가 됐다. 화병은 우리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설명하는 키워드”라고 말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